어느푸른저녁

아픔의 기록

시월의숲 2021. 9. 25. 20:59

이제 가을이라고 해야겠지. 고개를 들어보니 성큼 가을이 와 있다. 나는 8월 말부터 지금까지 유독 정신없는 날들을 보냈다. 새 업무를 맡으면서 가장 큰일이자 가장 부담되었던 일들을 어찌어찌 넘기고 나니 큰 산을 몇 개 넘은 기분이 든다. 물론 아직 마무리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고비는 넘긴 듯하다. 그게 스트레스로 작용을 한 것인지, 아님 단순히 운동부족이었는지 일을 하면서도 몸까지 아파서 더 힘들었다. 

 

바쁜데도 불구하고 2차 백신을 맞아야 했기 때문에 며칠을 쉴 수밖에 없었다. 2차는 1차와는 달리 첫날에는 아무런 증상이 없어서 의아했다. 흔히 2차 때 더 아프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째 날부터 1차 때와는 다르게 머리가 아파서 약을 먹어야 했다. 한 이틀 정도 머리가 아프고 몸이 나른했는데 설명하기 힘든 묘한 기분이었다. 백신 접종으로 인해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추석을 지내야 했기 때문에 더 힘들었다. 더구나 추석 연휴에 이틀이나 일하러 나가야 했던 것이다. 

 

백신 접종과 추석과 업무가 겹쳐져서 말하자면 총체적 난국이었다고 해야 할까. 나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수렁에 빠진 기분이 들었다. 백신 접종으로 몸이 좋지 않은데도 쉬지 못하고 차례를 지내고 일을 해야 했으니 그럴 만도 했으리라. 그 와중에 조카들하고 놀아주느라 허리까지 삐끗하고 말았다. 조카의 애원으로 평소에는 치지도 않던 배드민턴을 치느라 몇 번 라켓을 휘둘렀는데, 그게 딱 허리 근육에 무리를 준 것이다. 나는 허리의 통증에도 불구하고 헛웃음이 나왔다. 이거,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거야! 

 

이렇게 허리가 아파서 걷지 못할 정도의 통증이 느껴진 것은 이번이 두번째였다. 생각해보면 예전에는 살짝 통증이 있어도 이내 괜찮아지고는 했는데, 얼마 전에 가벼운 등산을 하고 난 후에 며칠 허리가 아파 걸음을 잘 걷지 못하다가, 이번에는 더 심해진 것이다. 나이 탓인가? 라켓을 휘두를 때 허리가 삐끗하는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허리 아래로 마치 마비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고, 통증으로 인해 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앉아 있을 때나 누워 있을 때는 괜찮은데, 그 자세에서 일어나려고 하면 허리가 무척 아프다. 그래서 출근을 하기 위해 세수를 하거나 머리를 감아야 할 때는 허리가 굽혀지지 않아서 참 난감했다. 겨우겨우 머리를 감고 옷을 입는 내 꼴을 보니 한심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출근을 해서 오전에 병외출을 달고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고 부황을 했는데, 할 때는 시원하다 느껴졌지만 그때뿐, 통증은 그대로였다. 그래서 다음날에는 정형외과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고 물리치료를 받고 약을 타 왔다. 정형외과의 의사 선생님은 뼈에는 아무 이상이 없고 단순히 근육이 놀란 거 같다고 했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그래도 통증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누군가 허리는 하루아침에 낫는 게 아니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이 맞다면 언제까지 아파야 한단 말인가?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와 약을 먹었기 때문인지, 어제부터 통증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듯하다. 앉았다 일어서서 걷는 것이 처음보다는 조금씩 수월해지고 있다. 그러고보면 우리는 일상생활을 하면서 참으로 많은 허리 근육을 사용하고 있구나 놀라게 된다. 통증 때문에 허리를 굽히지 못하게 되니 알겠다. 또한 아픔은 우리를 아프기 전과는 다른 세상으로 데려간다. 아픔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삶의 다른 이면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것이다. 통증이 점차 사라지고 나면 나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걷고, 움직이며 일을 할 테지만. 

 

어쩌면 아픔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하나의 시선 혹은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아픔이라는 프리즘으로 나를, 나를 둘러싼 세상을 바라보게 만드니까. 그렇게 바라본 세상은 참으로 불편하고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어느정도 긍정적인 면도 있지 않을까. 아픔이라는 건, 내가 나에게 보내는 어떤 메시지 같은 것인지도 모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