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봄이 벚나무와 하는 것

시월의숲 2021. 10. 5. 01:39

나는 바란다.

봄이 벚나무와 하는 것과 같은 걸 너와 함께 하기를.

 

- 파블로 네루다, '매일 너는 논다' 중에서,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수록.

 

 

*

어디서 저 문장을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내겐 기억나지 않는 것 투성이다. 하지만 저 문장을 읽었다는 기억만은 확실히 남아있다. 늘 이런 식이다. 그것을 떠올릴만한 상황에 대한 기억은 전혀 나지 않고, 오로지 그것을 읽었다는 느낌만이 남아있다. 이것을 느낌의 기억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느낌 또한 전혀 인지하지 못하다가, 우연히 그 문장을 읽었을 때 간신히 떠올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그렇지 않다면 나는 그 어떤 문장도 다시 떠올릴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봄에 대한 글을 어디선가 읽지 않았을까? 거기서 저 문장들이 인용되지 않았을까? 이런 추측은 사실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언젠가 내가 저 문장들에 감응했다는 것이고, 그것이 가슴에 남아 있었다는 것이고, 그래서 다시금 내가 그것을 내 안에 각인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니까. 그렇게 어떤 시인의 이름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단 몇 줄의 문장으로 혹은 몇 개의 단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