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간다

이터널스

시월의숲 2021. 11. 7. 01:24

 

이 모든 논란들은 도대체 누가 만들어내고 있는 것인가? 

영화를 보고 나와서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노이즈 마케팅인가? 어째서 이 영화에 대한 혹평이 이리도 많은지, 혹평에 대한 기사만 한가득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 영화는 '마블' 영화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블에서 나오는 모든 슈퍼히어로 영화들이 다 고만고만한 액션과 유머와 흥겨움을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건 자기 복제와 무엇이 다른가? 모든 것을 다 비슷하게 만들어서 판매하는 것이 좋은 것인가? 

 

애초에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이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이터널스를 보러가면서 어벤져스를 기대한 것일까? 이것은 클로이 자오 감독이 만든 <이터널스>라는 영화인 것이다. 물론 그들의 기대감과 실망감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우리는 너무나 오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벤져스의 흥겨움과 유머, 잘 짜인 액션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우리는 이 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인물들 간의 갈등과 드라마, 풍광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사람들은 어쩌면 갑작스럽게 등장한 인간이 아닌 종족에 대해 너무 박하게 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하여 그가 죽자 전 세계적으로 슬픔에 잠겨버렸던 아이언맨같은 캐릭터가 나오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언맨은 죽었고 블랙 위도우도 죽었다. 이제 마블의 세계는 일차원적이던 지구의 이야기에서 다차원적인 우주의 이야기로 넘어가려 한다. <이터널스>는 그 거대한 시작이다.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영화를 보기 전까지 나는 어떤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하도 혹평 일색이라서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 영화가 그런 비판을 받고 있는지 내 눈으로 직접 보고 판단하고 싶었다. 영화를 보고 난 지금 수많은 사람들의 혹평이 좀 부당하게까지 느껴진다. 이 영화는 그런 평을 받을만한 영화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가 걱정스러웠던 부분은, <노매드랜드>에서 인상적이었던, 클로이 자오 감독이 가진 특유의 연출력이 이 영화에서도 잘 발현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였다. 

 

이 영화는 <노매드랜드>에서 진하게 느껴졌던, 풍경 자체에 그 인물의 감정이 녹아들어 가 보는 이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그런 장면은 많지 않았다. 그러니까 한 사람의 감정의 소용돌이가 광활한 풍광과 만나 보는 이의 감동이 배가되는 경험 말이다. 예고편만 보았을 때는 어쩌면 그런 경험을 이 영화에서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다. <이터널스> 속 풍경들은 그저 광활하고 경이롭기만 할 뿐, 인물들이 가진 인간에 대한 사랑과 갈등, 고뇌를 담고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긴 그러기에 그들의 고뇌는 유한한 인간들이 가진 것에 비해 너무나 거대하지 않은가.

 

어쩌면 이 영화에 대한 실망은 그 부분에서 나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간들을 너무도 사랑한 '신'과 같은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 인간들의 고민과는 차원이 다른 '신'들의 고뇌라는 점. 그래서 인간은 이 이야기의 전면에 등장하지 못하고 배경으로 머물러 있다는 것. 하지만 나는 그렇듯 신적인 존재들인 이터널스들이 마음에 들었다. 그들은 불멸의 존재들이기도 하지만 무척 인간적인 존재들이기도 하다. 그들도 사랑을 하고, 배신을 하며, 아픔과 슬픔, 두려움을 느낀다. 이터널스 중 한 명인 스프라이트는 어떤가?

 

이 영화는 이터널스들이 자신을 만든 창조주에 대한 항거의 이야기이자 이를테면 자유의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혹은 진실에 대한 이야기(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이자 각자가 가진 신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기억의 무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각자가 가진 사랑에 대한 이야기. 나는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든다. 지금까지 나온 마블 영화에서 배우나 캐릭터가 아니라 감독의 이름이 생각나게 하는 유일한 영화가 아닐까. 그것이 완벽하게 성공한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이 정도면 근사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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