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강원국, 백승권, 박사,《강원국 백승권의 글쓰기 바이블》, CCC, 2020.

시월의숲 2021. 11. 10. 23:37

말은 잘하는데 글은 못 쓰는 건 글을 많이 안 써봐서 그런 거예요. 또 말은 시간을 주지 않아요. 말은 바로 해야 하는데, 글을 시간을 주죠. 시간을 주니까 어떻게든 잘 써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검열을 하게 되죠. 또 검열하다 보니 글쓰기가 어려워지는 거고요. 또한 글을 쓰러면 형식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게 문법이죠. 말에도 어법이 있지만, 문법이 훨씬 엄격하잖아요? 그래서 좀 어려운 측면이 있지요. 자기 생각을 글쓰기의 어떤 방식 안에 담는 건데... 잘 쓰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말하듯이 쓰면 누구든지 잘 쓸 수 있죠.(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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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착수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일단 시작하는 것. 우리 뇌는 무언가 착수했을 때부터 활성화하기 시작한다고 해요. '작동흥분이론'이라고 있어요.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글쓰기를 담당하는 뇌 부위가 활성화하기 시작해요. 시작하지 않으면 일을 안 하고 있는 거죠. 일단 무조건 시작해라. 자판 위에 손을 얹든지, 펜을 손에 쥐든지, 종이 위에 쓰든지, 일단 시작해랴. 저는 그게 글 쓰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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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독서는 뭐냐, 글을 쓰기 위한 독서여야 한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나서는 반드시 내 것을 챙겨야 해요. 내 쓸거리를 찾아야죠. 그게 안 찾아지면 화나는 일이죠. 왜 남의 생각에 설득당하고 감동해야 해요? 왜 독서를 하는데요. 내 것을 만들기 위해서죠. 김대중 대통령은 책을 읽고 나서 반드시 자기 생각을 챙긴다고 하셨어요. 내 생각이 안 나면 바로 다음 책으로 넘어가지 않고 계속 사색하면서 그 책에서 뭔가를 찾아내셨다고. 그렇게 찾아낸 것은 반드시 글에 써먹게 되고. 전 그게 독서하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그래야 비로소 독서하는 이유가 분명해지는 거죠.(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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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듯이 쓰고, 쓰듯이 말해라. 말할 때는 쓰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말하고, 쓸 때는 부담을 덜고 그냥 말하듯이 생각나는 대로 술술 쓰라고 권하고 싶네요.(1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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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글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운문 정신을 추구하는 글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산문정신을 추구하는 글입니다. 운문 정신은 장르적으로 시이기도 하지만, 이걸 추구하는 소설이나 수필도 있어요. 운문 정신은 사람들에게 모호함과 혼돈을 던져주는 거예요. 그래서 익숙한 생각을 깨뜨리고 자신의 상식을 회의하고 의심하게 해요. 이럴 땐 모호함이 대단한 작용을 하겠죠. 근데 산문정신을 추구하는 글들은 명백함을 추구하는 겁니다. 있는 것들을 아주 명백하고도 질서정연하게 드러내는 거예요.(1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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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랬잖아요. "지식의 영토가 넓어지면 그 넓어진 영토를 따라서 해안선이 길어지고, 그 해안선을 따라 바다를 동경하면서 모든 게 궁금해진다."라고. 제가 그걸 절실히 느꼈고 그런 상태가 굉장히 즐겁고 계속 생각나요. 덩어리가 커지면 자기들끼리 그 안에서 결합해서 새로운 생각이 나요. 그 상태를 경험해보면 단지 글쓰기가 글을 잘 쓰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이 자체가 즐거움이고 행복이라는 걸 알게 돼요. 이걸 하지 않곤 못 배기는 상태가 오죠.(1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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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책을 쓰라고 하면 "제가 무슨 책을 씁니까? 제가 쓸 말이 뭐가 있다고." 이렇게 말하세요. 여기에는 두 가지 생각이 전제되어 있어요. 첫째, '책은 특별한 사람이나 쓰는 것이다.' 둘째, '책을 쓰려면 특별히 할 얘기가 있어야 한다.' 저는 이 두 가지가 다 틀린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출판사에서 근무해 봤는데, 특별한 사람이 책을 쓰지 않습니다. 특별한 사람도 책을 쓰긴 하지만, 해마다 제일 많이 팔리는 책은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 쓴 책이거든요. 그리고 세상에 특별한 사람은 없어요.

그리고 특별한 이야기라는 것도 없습니다. 자기 이야기를 아주 구체적으로 솔직하게 쓰면 다 특별한 이야기예요. 자신을 다른 사람과 똑같은 사람으로 만들고 똑같은 이야기를 쫓아가는 데서 문제가 생기는 거지, 온전히 자기만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쓰면 그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이야기예요. 그건 자기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죠. 그리고 자기 이야기는 자기가 제일 잘 쓸 수  있어요.... 결국 책 쓰기는 특별한 사람이 특별한 얘기를 쓰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18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