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삼거리 매표소

시월의숲 2022. 1. 20. 11:43

며칠 전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여사장님께 인사를 하는데 낯이 익었다. 

 

"안녕하세요?"

 

"아..."

 

나는 사장님의 '아...'라는 반응에 의아해하며 자리에 앉아 음식을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고 밥을 먹는 중에도 계속 어디서 봤는지 생각했지만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분명히 예전에 본 적이 있거나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사장님도 나를 분명 아는 눈치인데, 어디서 봤지? 사장님께 물어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밥을 먹었다. 

 

"아주 옛날에 본 적이 있는데, 기억이 안나지요?"

 

밥을 절반 정도 먹었을 때쯤, 사장님이 우리 옆 테이블에 와서 앉으며 그렇게 물었다. 나는 안 그래도 궁금했다고, 어디서 뵌 것 같은데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고, 혹시 여기 말고 다른 식당을 하셨냐고 물었다. 사장님은 슬쩍 웃으며 식당은 여기가 처음이고, 이 식당을 한 지는 십 년이 넘었다고 말했다. 나는 뜸을 들이는 사장님이 살짝 야속했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나를 어떻게 아는지 말해주기를 기다렸다. 마치 엄마의 입만 쳐다보고 있는 아이처럼.

 

"삼거리 매표소."

 

"?......!"

 

그제야 두꺼운 기억의 장막이 걷히면서, 그 순간 내가 과거로 소환되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어느새 대학교를 다니기 위해 매일 타야 했던 삼거리의 옹색한 버스 매표소 앞에 서 있다. 한 평이나 두 평 정도 될까? 사람이 두 세 명 정도 들어가면 꽉 차는 낡은 컨테이너 박스가 그곳, 삼거리의 버스 매표소였다. 버스는 읍내의 터미널을 출발해 십 분 정도 나오면 삼거리를 지나가는데, 그곳에서 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으므로, 거기에 간이 매표소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거기서 한동안 매일 표를 샀지만, 매표소 안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매표소는 돈과 표를 주고받을 만큼만 뚫려 있었고, 창이라고 불리기에는 너무나 작은 네모난 구멍 정도가 있을 뿐이었는데, 그것도 가림막이 쳐져 있어서 밖에서는 안이 거의 보이지 않았으므로, 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는 오로지 목소리로만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거기서 표를 사고, 돈을 내고, 버스가 지나갔는지 묻곤 했다. 하지만 드물게 매표소 안에 있던 사람이 모습을 드러낼 때가 있었는데, 지금으로서는 왜 그 사람이 밖에 나와 있었는지 알 수 없다. 아마 그때도 몰랐으리라. 나는 그저 표를 사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버스를 타고 목적지에 가는 것이 전부였으니까. 그 외의 것들은 굳이 묻지도 않고 물을 필요도 없었으니까.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때가 있었고, 그럴 때면 그도 그 안에만 있기에는 지루했을 수도 있다. 혹은 바로 옆에 있는 마트에 물건을 사기 위해 잠시 나왔을 수도 있다. 어쨌든 나는 거기서 꽤 오랜 기간 버스를 탔으니, 잠시 스쳐지나갔다 하더라도 그 여러번의 스쳐감으로 인해 매표소 직원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인상에 남았을 것이다. 

 

그것은 참으로 신비한 일이다. 

 

과거의 어느 한순간이 순식간에 내 앞에 펼쳐진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어느 지점에 당도하듯이. 그는 그의 삶을 계속 살고 있었고, 나는 내 삶을 계속 살고 있었을 뿐인데. 어느 우연한 순간 잠시 서로를 알아보고 기억한다. 그의 기억 속의 나와 내 기억 속의 그가 잠시 조우한다.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참으로 신비한 일이 아닌가. 어쩌면 그것은 그와의 만남보다는 그로 인해 과거의 나를 만나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대학교를 다니던 나, 학교를 가기 위해 매일 아침 걸어서 삼거리 매표소로 가던 나, 승차권을 사는 나, 한겨울에 차표를 쥔 손을 외투 주머니에 꼭 넣고 버스를 기다리던 나, 세차게 불던 바람과 날리던 눈발을 몸으로 고스란히 받던 나, 버스에 오르던 나, 버스 차장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무심히 바라보던 나, 버스를 한 번 더 갈아타고 겨우 학교에 도착하던 나, 시외버스와 시내버스를 번갈아 타면서 녹초가 된 나, 수업을 듣다가 졸던 나, 버스값과 점심값을 제외하고 얼마가 남았나 계산해보던 나, 미래를 생각할 수 없었던 나, 아프면서도 어디가 아픈지 알 수 없었던 나, 내가 고작 나라는 사실에 절감하던 나, 그 시절의 나. 그런 개별적이면서도 하나인 나를 잠시나마 만날 수 있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나는 알아보는데 거기는 못 알아볼 수 있지. 나는 그때보다도 더 늙었으니까."

 

나를 몽상 속에서 건져내듯 불쑥, 사장님이 말했다. 

 

"저도 마찬가지인걸요."

 

사장님과 나는 서로 웃었다. 서로의 늙음이 우리를 웃게 했다.

 

그것은 신비하지 않고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