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닿을 수 있는 무한

시월의숲 2022. 1. 23. 16:36

 

*

금요일에 사무실에서 직장 동료가 내게 물었다.

 

"주말에 뭐 할 계획이세요?"

 

"아... 아마도 바다에... 가게 될 거 같아요."

 

동료는 갑자기 푹,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

 

"아, 죄송해요. 말씀이 웃겨서 그런 게 아니라, 바다에 간다는 말씀을 너무나 진지하게 하셔서 순간적으로 웃음이 났어요."

 

동료의 말에 내가 너무 진지하게 대답을 했나, 생각했다. 바다만 떠올리면 자동적으로 진지해질 수밖에 없는 내 가슴속 진지 버튼이 작동하는지도 몰랐다. 바다만 생각하면 괜스레 감상에 빠지고 쓸데없이 심각해지는.

 

오래전,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학교 수업을 빼먹고 소위 땡땡이를 치던 날이 있었다.(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었는데, 왜 그리 수업을 꼬박꼬박 들었던 것인지 지금 생각하면 좀 억울한 생각도 든다. 열심히 놀았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가 밀려와서.) 그날도 친구들 중에 드물게 자동차를 가지고 있는 친구가 느닷없이 말했다.

 

"바다 보러 가자!"

 

그 말 한마디에 우리는 모두 고개를 들고 그를 쳐다보았다. 아마도 그때 그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눈이 유난히 반짝였으리라. 마치 집단 주술에라도 걸린 듯, 우리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의 차에 탔다. 

 

바다는 그렇게 알 수 없는 힘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그 바다는, 한여름 뜨거운 태양볕 아래의 바다가 아니라, 겨울의 한가운데, 차가운 바람이 불고 거센 파도가 치는 바다였다. 한여름의 바다는 내 정신을 짓누르고 무르게 했지만, 한겨울의 바다는 내 정신을 들어 올리고 날카롭게 벼려주었다. 내가 바다만 생각하면 진지해지는 이유다.

 

그렇게 진지한 바다를, 진지한 마음으로,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무한에 가 닿을 수 있도록.

 

 

*

바다란 소란스러우면서도 고요한 살아 있는 형이상학, 바라볼 때마다 자신을 잊게 해 주고 가라앉혀주는 광막함, 다가와 상처를 핥아주고 체념을 부추기는 닿을 수 있는 무한이었다.(로맹 가리,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