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새해 첫 태양이 떠오르는 바다에 대해서

시월의숲 2022. 1. 14. 13:11

아직 2022년이 되기 전, 2021년 12월 중순의 어느 날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새해 첫날에 특별한 일이 있나?"

 

"아뇨, 별일 없는데요. 늘 그랬듯 늦게까지 잠을 잘 계획 외에는."

 

아버지는 실소를 터트렸다.

 

"새해 첫날인데 해돋이를 봐야 하지 않겠나? 가까운 바닷가에 가서 해돋이도 보고 회 한 접시도 먹고 오면 좋겠다만."

 

나는 생각해보겠다고 말했고, 12월 30일에 급성 식중독 증상으로 사무실에 출근하지 못하고 집에서 끙끙 앓고 말았다.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고 약을 지어먹었지만 그 여파는 생각보다 길어서 해가 바뀔 때까지도 몸이 아팠다. 당연히 아버지와의 약속 아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생기다 말아가지고... 라며 혀를 끌끌 찼고, 해돋이는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코로나 시국인 데다 날씨도 추운데 떨면서 무슨 해돋이를 보겠냐고도 말했다. 나는 아버지의 속마음이 어떤지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아픈 몸이 빨리 낫기를 바랐다. 그렇게 2022년을 맞았다.

 

나는 바다라면 굳이 새해 첫날이 아니라도 언제든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 몸을 어느 정도 추슬렀을 때 아버지에게 주말에 바다를 보러 가자고 말했다. 저번에 못 가서 마음이 별로 좋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완강하게도 괜찮다고 말했다. 나는 예상외의 반응에 어리둥절했다.

 

"왜요, 아버지? 저번에 바다 보러 가자고 말씀하셨잖아요!"

 

아버지가 대답했다.

 

"그냥 바다라면 언제든지 볼 수 있지. 하지만 내가 보고 싶었던 건, 그냥 바다가 아니라 새해 첫 태양이 떠오르는 바다였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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