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나는 먼저 이 말을 했어야 했다

시월의숲 2022. 1. 19. 00:35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 사람이 받을 상처에 둔감해진다.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건넨 한마디 말에 그가 말한다. 

 

"너희는 너희들 생각만 하는구나."

 

나는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언젠가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이런 문장을 썼었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얼마나 가 닿을 수 있나, 사랑이 아니면, 사랑하지 않으면."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바랐다. 나는 너무도 성급하게 모든 것들을 판단하고 결정지었다. 마치 나 자신이 전지전능한 힘을 가진 것처럼. 그렇게 말하면 그렇게 되는 것처럼.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나는 나 스스로의 역량을 너무나도 과대평가했다. 그런 말은 그렇게 쉽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먼저 이 말을 했어야 했다.

 

"타인의 고통에 가 닿지 않아도, 우리는 타인의 마음에, 그 마음 언저리에라도 가 닿을 수 있나, 사랑한다 해도,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라 해도."

 

나의 무신경함과 부주의함으로 일그러진 그 사람의 표정을 나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내 당혹스러움이 그 사람에게 전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닿을 수 있는 무한  (0) 2022.01.23
삼거리 매표소  (0) 2022.01.20
새해 첫 태양이 떠오르는 바다에 대해서  (0) 2022.01.14
청춘이란 그런 것  (0) 2022.01.09
상실된 것들의 잔재  (0) 2022.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