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사람일수록 그 사람이 받을 상처에 둔감해진다.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건넨 한마디 말에 그가 말한다.
"너희는 너희들 생각만 하는구나."
나는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언젠가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이런 문장을 썼었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얼마나 가 닿을 수 있나, 사랑이 아니면, 사랑하지 않으면."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바랐다. 나는 너무도 성급하게 모든 것들을 판단하고 결정지었다. 마치 나 자신이 전지전능한 힘을 가진 것처럼. 그렇게 말하면 그렇게 되는 것처럼.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나는 나 스스로의 역량을 너무나도 과대평가했다. 그런 말은 그렇게 쉽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먼저 이 말을 했어야 했다.
"타인의 고통에 가 닿지 않아도, 우리는 타인의 마음에, 그 마음 언저리에라도 가 닿을 수 있나, 사랑한다 해도,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라 해도."
나의 무신경함과 부주의함으로 일그러진 그 사람의 표정을 나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내 당혹스러움이 그 사람에게 전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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