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4시의희망

운 듯

시월의숲 2022. 3. 13.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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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일요일 오후.

식빵과 계란, 베이컨으로 간단히 점심을 때웠다. 창밖으로는 오랜만에 비가 내리고 있었고, 마치 안개의 숲에 들어선 듯 시야는 희뿌윰했다. 한낮인데도 비가 오고 흐린 날씨 때문인지, 나는 멜랑콜리한 고립감을 느끼며 커피를 내렸다. 집안에 퍼지는 은은한 커피 향기를 음미하는데 문득 이소라의 노래가 몹시 듣고 싶어졌다. 나는 살짝 기분 좋은 우울감으로 이소라의 6집이나 7집 혹은 아예 1집의 노래들을 들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쩐지 손은 상대적으로 많이 듣지 않은 이소라의 8집에 가 있었다. 새 앨범이 나오길 고대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나마 가장 최근의(무려 2014년에 나온!) 앨범에 손이 간 것을 보면. 이후에도 몇 개의 싱글이 나오긴 했지만 정식 9집 앨범은 아직 나오지 않았으므로. 나는 공식적으로 가장 마지막에 나온 8집 앨범을 꺼내 플레이어에 넣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3집에서 이미 그런 기미가 보이긴 했지만, 이렇게 작정하고 격렬한 락 앨범이 또 나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나하나 새삼스럽게 듣고 있는데 앨범의 제일 마지막 곡인 <운 듯>이라는 노래가 나오자 나는 마치 그것을 처음 듣는 것처럼 그렇게 놀란 눈으로 허공을 - 엄밀히 말해 노래가 나오고 있는 기기와 그것을 감싸고 있는 거실이라는 빈 공간을 - 바라보았다. 보이지 않는 노래가 마치 보이기라도 하듯. 하지만 엄연히 내 귀로 흘러들어와 생생히 존재하고 있음을 알리는 그 노래를. 아, 오늘의 노래는 바로 이거로구나, 나는 직감했다. 이 노래가 나를 이끌었구나. 이 비와, 희뿌연 안개와 낮은 먹구름과 이 우울함과 이 고립감이 나를 이 노래로 이끌었구나. 나는 몇 번이고 이 노래를 듣고 또 들었다. 여전히 창 밖으로 비가 내리고 있었고 커피잔에 남은 커피는 둥그런 얼룩을 남긴 채 굳어가고 있었다.

 

'너는 내 온 맘을 가져가 처음부터 잊혀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