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우리를 서글프게 하는 것들

시월의숲 2022. 9. 12. 20:24

 

비로소 혼자가 되었다.

 

나흘의 연휴가 꽤 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나는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말들을 하고서 후회를 했다. 혼자 있게 되어서 우울해진 것이 아니라, 혼자 있게 되기까지, 내가 한 말과 나에게 쏟아진 말들 때문에 우울해지고 말았다. 연휴 내내 울적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는데, 연휴가 끝나가는 지금 그 마음이 쌓이고 쌓여서 거대한 파도로 나를 덮치고 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이번 추석에는 즉흥적으로 경주 감포해수욕장에 가게 되었다. 원래는 경주에 볼 일이 있어서(그 볼 일이라는 것도 즉흥적이긴 했지만) 간 것이었는데, 간 김에 뭐라도 보고 오자고 해서 바다에 들른 것이다. 볼 일을 다 보고 도착했을 때는 벌써 어스름이 내린 저녁이었다. 우리들은 바다를 바라보며 천천히 걸었다. 방파제 끝에 도착해서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이 아니라 그림 같았다. 구름으로 꽉 찬 하늘 아래 펼쳐진 바다는 때로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자갈로 이루어진 해변가는 제법 많은 캠핑족들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쓸쓸함이 느껴졌다. 방파제 안쪽으로 공원 비슷하게 만들어진 곳은 풀들이 제 멋대로 자라 있었고, 깨진 보도블록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으며, 정체를 알 수 없는 쇠고리가 바닥 위로 비죽 솟아 나와 있었다. 그야말로 낡고 오래된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

 

그곳을 걷고 있으려니 쇠락이나 쇠퇴, 영락 같은 단어들이 절로 떠올랐다. 원래부터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였더라면 그런 마음이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손길이 미치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 곳, 버려진 곳, 방치된 곳, 그래서 낡고, 부식되고, 사라져 가는, 그곳은 그런 장소였다. 울적한 마음이 쌓이고 쌓여서 거대한 파도로 나를 덮치고 있다고 느낀 것은 어쩌면 이 풍경 앞에서 당연한 귀결이었으리라. 

 

하지만 내 그런 마음은 비단 바다와 바다를 둘러싼 풍경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내 그런 마음을 증폭시켰을 뿐,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다. 어떤 마음들. 다가가지 못하고 파도처럼 부서지는 마음들. 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말들. 후회하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끝끝내 하고야 마는 말들. 서로 각자가 지닌 마음들의 부딪힘. 상처가 나는 줄도 모르고 부딪히게 되는 그런 마음들이 우리들을 서글프게 한다는 것을.

 

우리들은 언제쯤 그런 마음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우리들은 언제쯤 그런 마음의 부딪힘 없이 서로를 맑은 눈으로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을까. 바닷가의 버려진 공원처럼 되지 않으려면 얼마나 많은 손길이 필요한 것일까. 나는 진정 그렇게 되지 않을 의지가 있는가. 그 생각에 이르자 나는 더욱 더 슬퍼졌다.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양이의 입장  (0) 2022.09.29
무언의 대화  (0) 2022.09.23
슬픔에의 예감  (0) 2022.09.06
익숙하면서도 낯선 감각이  (0) 2022.08.29
권진규의 테라코타  (0) 2022.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