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권진규의 테라코타

시월의숲 2022. 8. 18. 21:59

「지원의 얼굴」


인간 속에는 심지가 있는가
상처가 있는가?
···
속이 빈 테라코타가
인간의 속에 대해 속의 말을 한다.
인간에게 또 어떤 다른 속이 있었던가?

- 황동규, 「권진규의 테라코타」 중에서


*
미술을 전공하지도, 열렬한 미술 애호가도 아닌 나는 그저 미술 작품들이 주는 특이한(무어라 설명하기 힘든) 느낌들이 그저 좋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느낌들을 느낌으로만 흘려버리는 것이 아쉬워서, 미술 작품들이 건네는 느낌의 언어들을 조금이나마 구체적으로 알아들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관련 책도 읽고, 아주 가끔 전시회도 가곤 한다. 그러다 우연히 매혹적인 작품을 만나기도 하는데, 조각가 '권진규'도 이를테면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레 만나게 된 매혹적인 이름이었다.

나는 그때 인터넷 서점으로 미술 관련 서적을 보고 있었는데, 마로니에북스에서 나온 『권진규』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눈에 띌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 책의 표지가 그의 테라코타 작품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나는 전시회에서 직접 그 작품을 본 적도, 화집을 통해 그것을 본 적도 없었다. 이전까지 그의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던 나는, 그때 처음으로 그의 작품들 중 하나를 우연히 인터넷 서점의 책 표지로 만났던 것이다.

화면을 통해 뿜어져 나오는 그 흉상의 미묘한 분위기에 나는 사로잡혔다. 그래서 나는 권진규가 어떤 인물인지 전혀 알지 못한 채로, 단지 모니터를 통해 본 조각 작품의 작은 이미지 하나만으로 그를 기억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에 휩싸였다. 배수아가 「영국식 뒷마당」에서 '내 안의 깜깜한 고대동굴에 최초의 누군가 횃불을 들고 들어왔고, 그을음과 재, 동물의 기름과 붉은 흙으로 죽지 않는 화려한 벽화를 남겼다'라고 쓴 것과 마찬가지로, 꼭 그렇게.

하지만 그 순간 이후로 내 관심은 지속되지 않았고, 당시의 충격이라면 충격이었을 그 여파는 점차 옅어졌다. 심지어 나는 그 책을 인터넷 서점의 위시리스트에 넣어 놓기만 했지 실제로 구입하지도 않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불현듯 어떤 마음이 들어 위시리스트를 정리하다가 다시 그 책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어떤 이의 SNS에서 우연히 그의 작품을 보게 되었고, 나는 다시 그의 테라코타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이다. 테라코타 특유의 질감과 목에서 어깨로 툭 떨어지는 독특한 선의 형태, 다문 입과 담담한 표정에서 번지는 어떤 감정의 정체에 대해서. 마치 심연에 잠긴 듯 보이는 그 느낌, 분위기에 대해서.

나는 계속 그것을 생각했고, 그 생각이 이런 글을 쓰는 데까지 나아가게 했다. 때로 이 모든 것들이 꿈속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것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금방 깨달았다. 올해 5월에 서울에서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회가 열렸고, 많은 사람들이 그 전시회를 다녀와서 블로그나 SNS에 사진과 감상을 올렸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나는 권진규라는 조각가가 실제로 이 땅에 살았었고, 그의 작품들이 아직까지 이곳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나,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것이 더욱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어쩌면 나는 이미 너무 많은 말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을 실제로 본 적도 없으면서. 하지만 그의 작품을 실제로 보았을 때, 저 흉상들이 내게 어떤 말을 건넬지,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지금은 그것이 무척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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