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고양이의 입장

시월의숲 2022. 9. 29. 23:57

그 회색 길고양이는 가만히 다가와 내 주위를 몇 바퀴 돌더니 꼬리를 내 몸에 기대고 앉았다. 가을 햇볕이 따가웠는지, 내 그림자 속에 앉아 꼬리만 내 몸에 붙이고서. 검은색과 흰색 고양이가 각각 한 마리씩 더 있었지만 그들은 내 곁에 오지 않았다. 오직 회색 고양이만이 내 곁에 와서 앉았다. 나도 그냥 그렇게 고양이가 떠날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그 순간은 마치 내가 그 고양이와 꼬리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바타에 나오는 나비족들처럼.

길고양이인데도 불구하고 사람의 손길에 익숙해 보였다. 내가 조심스럽게 등과 머리를 쓰다듬어도 싫어하지 않고, 갸르릉 소리를 내며 계속 앉아 있었다. 회색과 검은색이 섞인 털의 무늬도 제법 멋있었다. 나는 고양이의 얼굴을 좀 찍어보고 싶었지만 고양이는 나와 시선을 잘 마주치지 않았다. 그저 내 곁에서 꼬리를 내게 기댄 채 뱅글뱅글 돌기만 할 뿐.

신기한 경험이었다. 강아지도 아니고 고양이가 내게 그렇게 친근하게 구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좀 얼떨떨한 얼굴로 함께 있던 동료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얘가 왜 이러죠? 나를 좋아하는 건가?"

"와, 오늘 저 고양이한테 간택받으셨네요."

"하하,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네요. 그런데 이거 기분이 무척 좋은 일이로군요!"

나는 고양이에게 아무것도 줄 게 없어서 좀 미안했지만, 고양이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게 얼마간 내게 머물다가 이내 지루해졌는지 소리도 없이 내게서 멀어져 갔다. 나는 멀어져 가는 고양이,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 고양이에게 눈빛으로 인사를 하며 사무실로 발길을 돌렸다. 동료가 그런 나를 보며 말했다.

"데려다 키우는 건 어때요?"

"음... 키우는 건 또 다른 문제죠.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니까."

"저도 집에 고양이가 있지만, 키우는 거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요. 강아지와 달리 대소변도 잘 가리고, 봐달라고 보채지도 않고, 혼자서도 잘 지내고."

"하지만... 고양이의 입장이라는 것도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제가 저 고양이를 집에 데려가는 것을 고양이도 과연 좋아할까요? 위험하지만 자유로운 야생의 삶을 저버리고 안락하지만 갇혀 지내는 삶을 과연 고양이는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과연 고양이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나와 같이 느끼는지..."

그렇다. 나는 잘 모르겠다. 어떻게 야생의 고양이가 인간의 집에서 인간들과 함께 살기로 결정하는 것인지. 고양이의 입장을 들어볼 수 없으니 그건 영영 알 수 없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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