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우리는 다만 삶이 주는 모욕을 견딜 뿐

시월의숲 2022. 10. 10. 23:58

 

그날의 날씨는 정말 거짓말 같았다,라고만 쓰고 싶었는데, 거짓말이란 것이 그렇게 좋은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나 싶은 생각이 들고, 믿을 수 없이 좋았다는 말을 나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구나 싶은데, 그러니까 긴 말이 필요 없는 날씨였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이미 나는 너무 많은 말을 하고 말았다.

 

이제 정말 가을이구나,를 몇 번이나 중얼거렸는지 모르겠다. 산책을 하다가 뜬금없이 오래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다녀온 일본 여행이 생각났다. 그때도 이런 숲길을 천천히 걸었다는 걸. 그때의 그 '낯선' 느낌이 지금 나를 사로잡고 있다는 걸. 나는 되새김질을 하듯 기억을 만지작거리며 시월의 숲을 걸었다. 

 

깨질 듯 투명하고 화창한 날씨도 마음속에 오래 남겨지지는 않는 모양이다. 그 순간은 언제나 그렇듯 찰나의 시간처럼 지나간다. 우리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했고, 내 앞에 남겨진 일상이라는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만 했다. 누구에게나 일상이 있고, 각자의 시간이 있지만,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그러니까 청년이 중년이 되고 장년이 되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일들을 모두 해내고 난 후에 맞닥뜨리게 되는 시간을 어떻게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이런 생각은 내가 이번 연휴에 고모와 함께 지내면서 자연스레 하게 되었다. 고모는 자신의 자식들이 다 집을 떠나고 혼자 있는 삶을 누구보다 쓸쓸히 여겼으며, 떠나 있는 가족들을 그리워했으나, 그리움을 달래기 위한 그 어떤 사회적인 활동도 하지 않았다. 고모가 바라보는 것은 그저 나이가 들수록 쇠약해지는 자신의 몸뿐이었는데, 그것은 좌절감과 상실감 외에 그 어떤 것도 말해주지 않았으므로, 그 역시 무력감만 더할 뿐이었다.

 

누구나 자신의 삶이 있고, 그 삶이 주는 시간을 누리며, 혹은 견디며 살아가지만, 어느 순간 맞닥뜨리게 되는, 자신이 다름 아닌 '유한한 존재'라는 자각,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없고, 우리는 다만 늙고 병들어 지쳐갈 뿐이라는 자각이 들 때, 삶이 주는 그 모욕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우리는 다만 삶이 주는 그 모욕을 견딜 뿐인가? 그저 견디고 견뎌서 어떻게든 버틸 뿐인가? 하지만 그렇게 견디고, 버티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유한한 삶'을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화창한 날씨에도 괜스레 눈물이 날 것만 같았던 것은 단순한 우연이나 몸의 이상 작용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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