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보이지 않지만 보이고, 들리지 않지만 들리는 것

시월의숲 2022. 10. 19. 00:13

너는 누구랑 이야기를 하고 있니?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들과 이야기하고 있어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데 어떻게 이야기를 할 수 있니?

 

저는 보이고 들리는 것들과의 대화가 더 어렵던걸요.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나 역시 그들의 이야기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건, 모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들이었어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아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이 있죠. 하지만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이면, 그들의 모습이 보이고, 그들의 목소리가 들린답니다. 보이지 않는 게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고, 들리지 않는 게 들리지 않는 게 아니에요.

 

넌 참 이상한 아이로구나.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상하다는 건 또 뭘까요? 무엇이 이상한 걸까요? 혹시 저를 포함한 이 세상이 이상한 건 아닐까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인간들 속에서, 이상하지 않는 삶이란 무엇인가요. 어쩌면 우리는 조금씩 다 이상하지 않을까요.

 

그는 아무 표정 없는 얼굴로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아이 역시 아무 표정 없는 얼굴로 그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