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로 둘러싸인 방 안에 앉아 있다. 읽지 않은 책들로 둘러싸인 방 안에 앉아 있으면, 책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 느껴지고, 마침내 나는 수없이 많은 말들의 일렁거림, 그 침묵 속에 침잠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점점 넓어지고 깊어지는 침묵의 바다에 수장당하지 않기 위하여 나는 아무 책이나 꺼내 펼친다. 그리고 그것을 읽는다. 그리고 이내 그것을 잊는다. 끝내 그것을 잊을지라도, 아무 말없이 그저 읽는 것만이 유일한 길임을, 나를 둘러싼 시선은 내게 침묵으로써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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