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제임스 설터, 《가벼운 나날》, 마음산책, 2013.

시월의숲 2022. 10. 22. 17:59

실제로 이 세상엔 두 종류의 삶이 있다. 비리의 말처럼, 사람들이 생각하는 당신의 삶 그리고 다른 하나의 삶. 문제가 있는 건 이 다른 삶이고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것도 바로 이 삶이다.(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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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삶이란 없다. 그 조각만이 있을 뿐. 우리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존재로 태어났다. 모든 것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간다.(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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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삶은 함께 꾸려졌고, 함께 짜였다. 그들은 마치 배우들 같다. 자기밖에 모르는 성실한 배우들. 오래된, 불멸의 연극 대본 이상의 세상은 없는 배우들.(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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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우리의 작물이고, 밭이고, 땅이다. 어둠 속에 풀려난 새들이다. 새로이 회복된 실수다. 그래도 아이들은 우리보다 삶을 조금 더 잘 알고 조금 더 성공적으로 그려나갈 수 있는 유일한 원천이다. 어떻게 해서 그들은 한 가지 일을 할 것이고, 한걸음 더 나아갈 것이고, 정상을 볼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믿는다. 미래로부터, 우리가 보지 못할 날들로부터 흘러나오는 밝은 빛을. 아이들은 살아야 하고 승리해야 한다. 아이들도 결국 죽는다는 것은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사실이다.(1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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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절망감이 너무 깊어서 가만히 있을 때에도, 심지어 잠을 잘 때조차 삶을 소모했다. 나중을 위해 조금도 남겨두지 않는다. 아껴둘 필요를 못 느낀다. 매 시간이 추락이었고, 모든 것을 던져버리려는 시도였다.(1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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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는 시작이 보이지 않는다. 어떤 국면에 이르러야만 벽에 균열이 보이고 기둥이 쓰러지고 건물의 앞면이 내려앉는다.(1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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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감각이란 대개 신경 쓰지 않는 태도에서 와요."

"아, 그렇지 않아요."

"거리를 두어야 유머를 가질 수 있어요. 역설이죠. 인간만이 유일하게 웃는 존재라고 하는데, 웃을수록 마음을 안 쓰게 된다는 거죠."(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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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에서 들어오는 강한 빛 속에 서 있다가 고개를 약간 돌리면 심각한 표정이 좀 지워졌다. 뒤로 조금 물러서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 정도가 사람들과 가장 가까이 있는 거리야.(1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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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좋은 것, 훌륭한 것은 달랐다. 그것은 저항할 수 없고 살인적인 것이다. 다른 공격 행위처럼 피해자가 생겼다. 간단히 말해 그건 정복이었다. 우리는 모호해야 하고, 우리는 부드러워야 한다. 안 그러면 사람들을 죽이게 된다. 의도야 어쨌든, 눈부신 비전 속에서 사람들을 짓누르게 되는 것이다. 실패자는 바보고 허약한 사람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런 사람에게 미덕이란 없었다.(2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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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서워하는 유일한 건 '평범한 삶'이라는 두 단어야.(2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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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삶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의 공포는 고백할 수 없는 종류였다.(2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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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런 나이에 가까워지고 있었고, 바로 그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세상이 갑자기 더 아름다워 보이고 특별한 방식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지붕과 벽의 모든 디테일이 눈에 들어오고, 비오기 전 나뭇잎이 바람에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까지 보이는 그런 나이. 세상은 자신을 허락하듯이 몸을 여는 거였다. 이제 남은 인생이 길지 않으니 한번 길고 절실하게 세상을 보라고, 그래서 그동안 잡고 있던 것들을 세상이 놓아주는 것이었다.(2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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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찾아오는 중요한 깨달음 중 하나는 꿈 꾼 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이다.(3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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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갔을까, 그녀는 생각했다.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3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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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구하는 것은 언제나 우연이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어떤 사람이다.(3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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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마치 중요한 일을 수행하듯 우리 자신을 보존한다. 그러기 위해서 항상 다른 사람을 희생시킨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비장해둔다. 남들이 실패하면 우리가 성공한 것이고, 남들이 바보 같으면 우리는 현명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실을 부여잡고 나아간다.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을 때까지.(4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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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자기 아버지처럼 갑자기, 그해 가을에 죽었다. 음악회에서 좋아하는 악장이 연주될 때 떠나듯, 불이 켜지기 한 시간 전에 나오듯 그렇게 갔다. 아니면, 그런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가을을 사랑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을, 아프리카의 해변처럼 뜨거운 정오의 태양을, 끝없이 퍼지는 맑은 가을밤의 냉기를 좋아하는 여자였다. 웃으며 재빨리 빠져나가듯, 시골에 가듯, 다른 방으로 가듯, 여기보다 더 멋진 곳으로 저녁 외출을 하듯 그렇게 갔다.(429~4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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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건 순식간에 일어났다. 긴 하루였고, 끝없는 오후였다. 친구들은 떠나고 우리는 강변에 서 있다.

그래, 그가 생각했다. 나는 준비됐고, 언제나 준비가 되어 있었어. 마침내 준비가 되었고.(43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