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순간에 대해서 쓰려고 했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바로 그 순간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그러나 글을 쓰기 시작하자, 그것은 하나의 순간이 아닌 동시에 존재하는 많은 순간들이 되었다. 글은 모든 순간에 있었다. 나는 글과 함께 있었다.(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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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시간이 꽤 흘렀다. 하지만 나는 계속 이 책에 대해서 생각했다. 이 책은 내 책상의 왼편에 늘 있었고, 나는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난 후 책상에 앉을 때면 늘 이 책을 볼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나는 이 책과 하나가 되기를 바랐던 것 같다. 책을 둘러싸고 있는 특유의 멜랑콜리와 아름다운 순간들을, 그 문장들과 영원히 작별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 책은 정원에 관한 산문이자, 글쓰기 혹은 읽기에 대한 글이다. '베를린 서가의 주인'과의 대화이자 작가 자신과의 대화의 기록이다. 하나의 순간이 아니라 동시에 존재하는 많은 순간들에 대한 글이다. 하지만 이상하지. 처음에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한동안 나는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나는 늘 이 책과 함께였고, 늘 책에 대해 생각했지만 막상 그것을 글로 쓰려고 하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저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알 수 있었다.
작가는 서두에서 자신이 '글을 쓰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쓰려고 했다고 썼다. 하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자, 그것은 하나의 순간이 아닌 동시에 존재하는 많은 순간들이 되었다고. 글은 모든 순간에 있었고, 자신은 글과 함께 있었다고. 나 역시 처음에는 순간에 대해서 쓰고 싶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하지만 책을 읽기 시작하자, 그것은 하나의 순간이 아닌 동시에 존재하는 많은 순간들이 되었다. 나는 책 속의 모든 순간에 있었고, 있기를 바랐다.
한 권의 책을 끝까지 읽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것은 언제나 새로이 반복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읽은 페이지를, 문장과 단락을 되풀이해서 읽으며, 매번 그것을 다른 글로 받아들인다. 한 권의 책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닫는 순간 나는 그 책에 담긴 모든 것을 잊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다시 읽기 위하여.(31쪽)
나는 이 문장이 마치 내 독서에 대한 변명이라도 되는 듯, 그것을 신봉한다. 이 문장을 읽자마자 나는 처음부터 그것을 찾아 헤맸다는 듯, 드디어 내가 무의식적으로 찾아왔던 문장들을 발견한 듯한 희열을 느꼈다. 나는 이미 읽은 페이지를 문장과 단락을 되풀이해서 읽으며, 매번 그것을 다른 글로 받아들인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닫는 순간 나는 그 책에 담긴 모든 것을 잊는다.
처음부터 다시 읽기 위하여.
그렇게 나는 '작별이 저절로 발화되는 현장'을 매번 목격하게 되리라. '오직 빛과 호흡만이 있는 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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