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것

시월의숲 2023. 5. 30. 23:19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게 좋아."

 

"그게 무슨 뜻이야?"

 

"노는 시간에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거든. 그러다 태양이 보이면 우리가 같은 태양을 볼 수 있단 사실을 떠올려. 비록 같은 장소에 함께 있진 않더라도 같이 있는 거나 다름없잖아? 같은 하늘 아래 아빠랑 내가 있는 거니까... 그럼 같이 있는 거지."

 

- 샬롯 웰스 감독, 《애프터썬》 중에서

 

 

*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그 영화의 자장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가 있다. 일을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불현듯 그 영화의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그러면 슬픔이랄지... 알 수 없는 감정의 덩어리가 가슴속에서 만져지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내겐 지금 이 영화가 그러하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잊지 못할 예술작품을 경험한다는 것은) 한동안 그것을 앓는 일이 아닌가. 그렇게 일정 시간 그것을 앓고 난 후에야 나는 또 한걸음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내가 그것과 겨우 작별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일 테고. 나는 아직 이 영화를 망각 속으로 떠나보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내가 이 영화를 보기 전 무방비 상태였던 것처럼, 보고 나서도 울컥 솟아나는 알 수 없는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다. 이 난감한 슬픔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나고 싶지도 않은 그런 상태로 나는 지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