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그 푸르던 여름의 시작에서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시월의숲 2023. 6. 28. 23:08

 

온통 녹색으로 둘러싸인 곳에 있었다. 고흐의 그림이 걸려 있고, 창밖으로는 눈부신 햇살과 푸른 나무가 보이는 통나무집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집안에 머무는 내내 나무 냄새가 났다. 햇살, 바람, 나무, 구름, 산...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여름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들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조금씩 닳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아니겠는가. 시간은 우리들을 저 멋모를 대학생 때로부터 얼마나 많이 떨어뜨려 놓았는지. 이번에도 우리들은 만나면 늘 하는 이야기를 했지만, 예전과는 달리 그것은 조금 지쳐 보였고, 오래 전의 흥미를 조금씩 잃어가고 있는 듯 느껴졌다.

 

오래된 나무처럼 조금씩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는 걸, 이제는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기 때문일까. 집안 가득 고여 있던 나무 냄새처럼 진득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하여 결국, 고요해지기를. 오래된 나무처럼 색은 바랠지라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그 푸르던 여름의 시작에서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