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속의검은잎

단상들

시월의숲 2023. 11. 30.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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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책장을 보는데 데이비드 빈센트의 『낭만적 은둔의 역사』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제목에 이끌려 읽었던 것 같은데, 어떤 내용이었는지 정말 까맣게 생각나지 않는다. 아무리 망각이 내 특기이고, 어치피 모든 것들이 종국에는 잊힐지라도 이건 좀 충격적이랄까. 어쩌면 제목만으로도 충분했던 걸까?(2023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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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있고, 없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양이는 있지만 없고, 없지만 있다.(2023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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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힘들다고 내게 말했지. 하지만 네 고통을 내가 얼마나 이해할 수 있겠니. 내 고통이 너에게 전해지지 않듯이. 나는 그 사실이 너무나도 고통스럽다.(2023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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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를 어떡하면 좋겠니. 내가 말하자 기다렸다는 듯 쏟아지는 걱정들. 황망한 눈물과 그건 아니라는 단호한 입술과 쓰디쓴 술잔들. 그래, 우리는 너무 착한 아이들만 보았지. 우리의 우려가 기우이기를, 착각이거나 망상이기를 우리는 바라고 또 바랐다.(2023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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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한 것도 없는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라는 말의 저 밑바닥에는 뭔가 의미 있고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깔려 있는 것 같다. 헌데 생각해 보면 우리는 실제로 뭐라도 하고 있지 않은가?(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게 말이 되나? 아무튼)

 

'뭘 한 것도 없다'라고 생각하는 그것이 반드시 의미 있고 생산적이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그것은 아마도 내 앞에 주어진 이 시간이, 나를 통과해 흘러가는 이 시간의 무참함이 너무나도 무섭고 아쉬우며 때때로 통렬하게 다가오기 때문은 아닌가.(2023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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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텍스트는 발음되기도 전에 들린다. 그것이 문학이다.

 

- 파스칼 키냐르, 《은밀한 생》 중에서

 

모과를 얻게 되었다. 누군가에게서 모과를 받아 본 적은 처음이었다. 집에 가져와 깨끗이 씻고 두 개의 바구니에 나누어 담아 하나는 내가 자는 방에, 하나는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아직은 푸릇푸릇한 모과라서 그런지 향이 진하진 않지만 조만간 집안 가득 그윽한 모과향기로 가득 찰 것이다.

 

모과 향기로 가득한 집안을 생각하고 있으니 파스칼 키냐르의 저 문장이 불현듯 떠올랐다. 나는 그 문장이 마치 이렇게 들렸다. '아름다운 향기는 단지 그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맡아진다.' 나는 당분간 집에 도착하기 전부터 모과 향기를 맡을 것이며, 그리하여 문학적인 집이 될 예정이다.(2023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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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너무나 많은 말들 속에 있다 집으로 돌아왔다. 나 역시 너무나 많고, 쓸데없는 말을 쏟아냈으니, 그 말들의 홍수에 일조를 한 셈이다. 서둘러 돌아온 집은 말이 없다. 집은 침묵으로 넘치고 나는 하루의 절반 이상을 집에 있건만, 왜 침묵을 배우지 못하는가. 왜 침묵에 젖지 못하는가.

 

침묵을 원하면서 침묵을 이야기하는 아이러니. 정확히는 그것을 글로 표현하는 아이러니라니. 말과 글은 어떻게 다른지. 말의 반대말이 침묵이라면, 글의 반대말은 절필인가. 하지만 절필이라고 표현할 만큼 나는 글을 쓰고 있는 것인가? 오늘은 이래저래 정신이 사나운 모양이다.(2023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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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듯, 가을인가 싶으면 겨울이고 겨울인가 싶으면 봄이겠지. 내가 성급한 건지 계절이 성급한 건지 판단을 내리지 못한 채로 성급히 시간은 흐르고, 나는 늘 어리둥절한 얼굴로 계절의, 시간의 어떤 통로를 서성이고만 있다.(2023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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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2023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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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어떤 단어에 꽂히면 과거에 그 단어로 내가 어떤 말들을 했는지 찾아보곤 하는데, 오늘은 '마음'이라는 단어가 계속 생각이 나서 검색해 보니, 나는 그 단어를 참 많이도 사용했구나, 싶었다. 타인의 마음도 마음이거니와, 내 안에도 수없이 많은 마음들이 웅성거리고 있구나.

 

그 마음의 웅성거림을 어찌할 줄 몰라 나는 이곳까지 흘러왔구나. 하지만 이곳에서조차 마음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들이 있구나. 그 마음들은 어찌해야 하는지 알 길이 없구나. 뭐,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다.(2023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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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취미가 뭐냐고 물었다. 나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마지못해 독서와 영화감상이라고 했는데, 말하고 보니 그런 걸 취미라고 할 수 있나 싶었다. 취미라는 말 자체가 철 지난 단어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내 대답 또한 그런 것 같았다. 그리고는 문득 궁금해졌다. 진정 나의 취미가 무엇인지.(2023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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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늘 눈이 왔던가? 누군가 눈이 온다고 말했을 때, 나는 창밖을 보지 못했네. 내가 보지 못했으므로 그것을 첫눈이라 하지 않으련다. 내가 보기 전까지 첫눈은 내리지 않을 것이므로.(2023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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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얄팍한 위로라고 경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소소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위로가 때론 사람을 살아가게 할 수도 있다는 걸 당신도 결코 모르시지는 않겠지요. 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거창하고, 고차원적인 위로(그런 게 있을까요?)가 아니라 그냥 툭 던지는 한마디 말속에 들어 있는 사소한 위로란 것을. 어쩌면 위로란 그런 것이 아니겠는지요.(2023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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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후회할 걸 알면서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미래에 하게 될 후회보다도 지금 당장 해야만 하는 욕구가 더 크기 때문이겠지. 이래서 사람은 배우지 못하는 것일까? 인간이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이유를 나는 오늘 탕후루를 시키면서 다시 한번 더 절감했다!(2023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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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고 배고프다,라는 말에 대해 생각한다. 추운데 배고프기까지 하다면 정말 최악일 테니까(거기에 돈까지 없다면!). 요즘은 매번 밥을 먹을 때마다(특히 저녁을 밖에서 먹을 때마다) 그 말을 떠올리고는 얼마나 다행인가 안도한다. 일단 밥을 먹고 나면 웬만한 추위는 한걸음 물러나 있는 것이다.(2023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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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망각이라고 했는데 그는 맘각이라고 썼다. 그 순간 나는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2023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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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입한 동아리에서 나를 소개하는 글을 써달라고 했다. 회원들 몇 명이 재미 삼아 회지를 만드는데 내가 쓴 글도 몇 편 실렸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끼리 재미로 만드는 회지인데 저자 소개가 웬 말인가 싶었지만 말하지는 않았다.

 

다만 내 소개를 몇 줄이라도 써야 한다는 난감함 때문에 한참을 고민했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단 한 줄, '지극히 평범한 직장인' 뿐이었다. 도대체 내가 나를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까? 나는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는데.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다는 걸 쓰기로 했다. 그게 나라고.(2023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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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의 전화를 받을 때, 내가 늘 같은 말을 한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뭐 해?"

"그냥 있지 뭐."

"......"

그러니까 나는 늘 '그냥 있는' 것이다.(2023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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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분. 설명할 수 없는, 차갑고, 서글프고, 우습고,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고, 무엇에 쫓기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채로 두리번거리고, 지치고, 닳고, 혹사당하며, 메마르고, 압박당하는 듯한 그런 기분. 그 누구와도 이야기하기 싫고, 오로지 혼자 있을 때만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 쉬는.(2023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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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침이 잦아드니 겨울이다.(2023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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