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속의검은잎

단상들

시월의숲 2024. 6. 2. 18:48

*

얼마 전에 미술관에 갔다가 '미술관 옆 화장실'이라고 적힌 팻말을 보았다. 그걸보고 ‘미술관 옆 동물원’을 떠올리면 옛날 사람이려나? 남자 주인공이 굉장히 무례한 캐릭터였던 것 같은데… 심은하가 쓰던 노란 우산이 떠오른다. 스틸 사진 속 배우들은 모두 풋풋하다.(20240516)

 

 

*

새 책을 사는 것도 좋고,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을 바라보는 것도 좋은데, 일단 지금 읽고 있는 책을 계속 읽는 게 좋지 않을까?(20240518)

 

 

*

고향은 좋고 싫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고향은 그냥 고향인 것이다. 고향이 좋냐는 물음에 나는 늘 대답을 망설이곤 했다. 그것은 내 고향이 싫어서도 아니고 좋아서도 아니었다. 고향에 대해서라면 단정적으로 대답하기 힘든 무언가가 있다.(20240518)

 

 

*

종일 집에만 있다가 오후 늦게 집에서 나왔다. 며칠 전에는 대설주의보라는 말을 듣다가 갑자기 이 무슨 여름의 기운인지? 수런거리며 불어오는 바람에 여름의 냄새가 났다.(20240519)

 

 

*

햇살이 그리 부드럽지만은 않았지만, 곧 있으면 그늘만 찾아다닐 것 같아,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산책을 했다. 아직까지는 걸을만하다. 장미가 조금씩 지고 있고, 나무들은 점차 녹음이 짙어진다. 길을 걷다 노란 들꽃 다발과 통나무를 보았다.(20240524)

 

 

*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를 지나, '오 행복행복행복한 항복 기쁘다우리 철판깔았네'를 지나.(20240525)

 

 

*

오늘은 늦잠을 자지 않고 일찍부터 일어나 빵을 사고, 시장에 들러 김밥을 샀다. 적당히 부드럽고 꾸덕한 크림치즈빵도, 참기름이 듬뿍 들어간 김밥도 고소하고 맛있었다. 시장 상인들은 어딜 가나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일으킨 트롯가수 이야기만 했다. 늦잠 대신 낮잠을 잤다. 자고 나니 저녁이다.(20240525)

 

 

*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도 듣고 싶고 거절도 잘 하고 싶다면, 그건 욕심일 뿐이다. 둘 중 하나는 어느 정도 포기하라고 말하고 싶다. 나에게 상대의 부탁을 거절할 자유가 있듯이, 거절당한 상대가 나에게 실망할 자유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정문정<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나도 편하게 거절할테니 당신도 편하게 실망하시라고. 당신의 실망에 실망하지 않겠노라고.(20240529)

 

 

*

누군가 내게 책을 선물한다고 하면(아주 드문 일이지만) 어떤 책이든 가리지 않고 무조건 받고 보는데, 그건 일단 책이라는 물성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이지만, 받아서 집으로 가져온 다음에는 종종 난감한 상황에 처하곤 하는데, 그건 내가 그 책을 단 한 글자도 읽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20240530)

 

 

*

알고는 있는데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말문에 막힐 때가 있다. 그거 있잖아 왜... 하면서 그 단어를 설명하려 하면 상대방이 답답해하다가 그거?라고 말하면, 그제야 생각이 난 나는, 그래, 그거!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과 좀 다르게, 글을 쓸 때는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단어들을 쭉 쓰지만, 쓰고 나서 다시 보면 중간중간 이가 빠진 것처럼 몇몇 단어들이 빠져있다. 말을 할 때나 글을 쓸 때 빠져나가는 단어들. 생각과 말, 글의 간격.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누군가는 말하리라. 너, 나이 들었어!(20240530)

 

 

*

처음 반딧불이를 보았을 때를 잊지 못한다. 날아다니던 작은 불빛을. 허공에 그려지던 빛의 그림을. 그것은 단 한 마리의 반딧불이었다.(20240531)

 

'입속의검은잎'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상들  (2) 2024.07.05
단상들  (2) 2024.06.18
단상들  (2) 2024.05.25
단상들  (4) 2024.05.04
단상들  (4) 2024.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