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내게 시간은 순차적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밤이 어제의 밤과 이어져 있고, 오늘의 한낮이 어제의 한낮과 이어져 있다. 나는 아침에서 아침으로, 낮에서 낮으로, 밤에서 밤으로 이어지는 제 각각의 시간 속에 존재한다. 새벽은 새벽을 기억하고, 낮은 낮을, 밤은 밤을 기억할 뿐.
그렇게 분산된 시간 속에 존재하는 나(들)는 전혀 다른 사람들처럼 보인다. 아침의 나와 한낮의 나, 밤의 나는 전혀 다른 존재로써, 각각의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오로지 어젯밤의 내가 오늘 밤의 나에게 흔적을 남기며, 내일 밤의 나에게 손짓할 수 있다.
계절도 마찬가지다. 봄이 오면 여름이 오고 가을과 겨울이 오지만, 작년의 봄과 올해의 봄, 내년의 봄이 이어지고, 여름과 여름이, 가을과 가을이, 겨울과 겨울이 이어진다. 올해의 여름에 나는 얼마나 과거의 여름을 떠올렸던가? 하지만 미래의 여름은 알 수 없다. 베일에 싸여 있다. 뿌연 안갯속에 가려져 있다. 하지만 여름엔 여름을 생각한다. 과거의 여름과 미래의 여름을. 그렇게 나는 한 계절을 산다. 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