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문학은 침묵으로 환원된 개인의 언어를 가진다

시월의숲 2024. 8. 28. 17:51

 


매혹에 관해서, 귀는 음악을 가지고 있다. 눈은 회화를 가진다. 죽음은 과거를 가진다. 사랑은 타인의 벌거벗은 육체를 가진다. 문학은 침묵으로 환원된 개인의 언어를 가진다.(파스칼 키냐르, 『은밀한 생』 중에서)
 
 
*
자신이 쓴 글을 가장 많이 읽어보는 사람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라고, 어떤 소설가는 말했다. 문득 그 말이 생각났다. 나는 소설가도 뭣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쓴 글을 가장 많이, 가장 즉흥적으로, 우연하게 읽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읽는가?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문득 어떤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소위 '꽂힌다.' 그런데 그렇게 꽂히는 이유는 여러 가지 작용들이 합쳐져서 발생한다. 어떤 사건, 사소한 대화, 우연한 발견, 뉴스와 여러 미디어가 전해주는 활자의 홍수들 속에서, 특정 단어가 내게 발견되는 것이다.) 그렇게 발견된(꽂힌) 단어가 '매혹'이라고 하자. 그 지점에서부터 나는 매혹이라는 단어로 내가 어떤 글을 썼는지 궁금해진다. 나는 내 블로그나 트위터에 들어와 '매혹'이라는 단어를 넣고 검색을 한다. 당연하게도 매혹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글들이 쭉 나온다. 나는 그것을 읽는다. 마치 내가 쓴 것이 아닌 것처럼. 그것을 처음 읽는 사람처럼 생소한 눈으로. 그것은 일종의 놀이다. 나 혼자 즐기는 나만의 놀이. 그렇게 매혹이란 단어가 들어간 글들을 다시 읽으며 매혹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쓴 글뿐만 아니라 내가 발췌해 놓은 소설가나 시인의 글도 다시 읽는다. 나는 다시금 파스칼 키냐르의 저 문장을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매혹에 관해서, 문학은 침묵으로 환원된 개인의 언어를 가진다.'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류장에서  (3) 2024.09.18
오래된 묘지  (0) 2024.09.07
당신의 인생 영화는 무엇인가요?  (0) 2024.08.15
여름밤, 팔월  (0) 2024.08.02
치마를 입은 이상(李箱)  (0) 2024.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