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모든 책은 읽히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시월의숲 2025. 1. 12. 00:58

책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책은 읽히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어느 책 유튜버의 영상을 보고 깨닫게 되었다. 그는 말한다. 오랫동안 살아남은 책들은 결코 그 책이 쉽게 읽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자신의 의도를 잘 숨기는 책이야말로, 비밀로 가득한 책이야말로, 소비되지 않는 책이야말로 진정한 책이라 불릴 수 있다고. 포르노적인(오로지 보여주기 위한) 책,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결코 책이 아니라고.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의 말은 일부분만 맞는 것 같다. 현란한 수사나 공허한 묘사로 가득한 책, 오로지 팔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책은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 책의 존재 이유를 잘 읽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서만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오히려 쉬운 말로 심오한 이야기를 하는 책이야말로 진정 가치 있는 책이 아닐까. 무참한 시간의 이빨에 물어 뜯기지 않고 살아남은 책들은 잘 읽히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판가름 나는 것이 아니라,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이 얼마나 인류의 보편적 진리를 담고 있는지, 그리하여 얼마나 개별적이고 독창적인 성찰을 담고 있는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닐까. 아, 이건 너무 진부한 말이긴 하다. 하지만 나는 진부한 말속에 담긴 진리를 믿는 편이다.

 

그러니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랜 시간을 견뎌낸 책들 - 이른바 고전들이 - 쉽게 곁을 주지 않고, 자신의 비밀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으며, 그리하여 쉽게 소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그의 말은, 요즘의 포르노적인(그는 쉽게 읽히는 책들을 포르노적이라고 했다) 책들의 무분별한 홍수에 대한 경계로 읽힌다. 다시 말해 그것은, 고전에 숨겨진 비밀을 기어코 읽어내고야 마는 행위에서 오는 희열에 대한 예찬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쉽게 읽은 책은 쉽게 잊힌다.(물론 쉽게 읽었다고 해서 쉽게 잊히는 책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렵게, 포기하지 않고, 몇 번이고 읽으며 책의 비밀에 다가간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성취감과 깨달음은, 그렇게 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감히 짐작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클지 모른다. 다른 건 몰라도, 그것이 그 책을 결코 잊지 못하게 할 것임은 틀림없을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