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속의검은잎

단상들

시월의숲 2025. 6. 1.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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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왼편 경사로를 끝도 없이 오르락내리락,

질척이는 소음의 늪지를 지나

바람을 흔드는 새떼들의 하늘 지나

낯선 길 하염없이 가고 있는 젊은 그녀 본다

겨잣빛 표정 위에 스치듯 피었다 지는 햇살 꽃송이 본다

 

- 류인서, 「삽화-부산역」 중에서(『그는 늘 왼쪽에 앉는다』 수록)

 

류인서의 시집을 들췄는데, '부산역'이라는 부제가 붙은 시가 눈에 들어온다. 1박 2일간의 일정으로 부산을 다녀왔기 때문일까. 여행이 목적이 아니었기에, 내가 부산에서 한 거라곤 고작 어젯밤의 짧은 해운대 산책이 전부였음에도 불구하고, 부산이라는 단어가 아직 내 곁에 남아 있는 느낌이다.(2025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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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있는데, 정말 책의 글자들이 낱알처럼 흩어지는 느낌이다. 그러모아지지 않고 흩어지고, 새어나가고, 부서져서, 단순히 읽는다는 행위, 글자들의 음절 하나하나를 읽되,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그리하여 읽는다는 행위의 지극히 기능적인 요소만 남은 그런 상태다. 그러니까 책이 읽히지 않는다는 말이겠다. 종종 이런 상태에 빠진다(대부분 그런 상태인 것 같지만). 한숨 돌리고, 잡생각은 몰아내자. 책이 읽히지 않는다면 다른 걸 하면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그렇게 나를 다독인다.(2025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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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가 내게 에두아르 르베의 《자화상》을 팔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 것 같아서 슬펐다. 하지만 내 마음도 너무나 잘 알기에 나는 슬픔을 무릅쓰고 거절의 답신을 보냈다. 우리는 잠시, 서로의 '자화상'을 들여다본 것인지도 모른다.(2025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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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게 만드는 것은 쾌락이 아니라 고통이기 때문이다. 행복한 자는 질문하지 않는다. 묻는 것은 언제나 불행한 자이다.(···)더 많이 고통받으면 더 많이 묻는다. 좀 더 절실하게 질문하는 자가 해답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마련이다.

 

- 이동진,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 중에서

 

좀 더 절실하게 질문하는 자가 해답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마련이라는 말에는, 불행한 자, 고통받는 자의 질문에는 어떤 해답이라는 것이 있다는 말일까? 고통받는 자의 질문이란, 답이 없는, 질문을 위한 질문, 질문 자체로 완성되는,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의 분출로서의 질문은 아닌가.(2025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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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통화를 하기 전까지는 괜찮았다. 통화를 하면서 요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일에 대해서 큰 목소리로 막 떠들었더니 갑자기 몸에서 열이 났다. 이상하다 싶어 방안 온도를 봤더니 통화를 하기 전보다 1도 올라가 있었다. 선풍기를 틀었다. 흥분은 가라앉았으나 방 온도는 내려가지 않는다.(2025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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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언어)로 받은 상처는 말로 풀어야 하는 걸까. 때로 어떤 말들이 내게 들어와 독이 되고, 그 독은 나를 병들게 한다. 병든 나는 말을 잃는다. 표정을 잃는다. 마음을 잃는다. 그리하여 결국 몸을 잃을 것이다. 나는 다시 살기 위해 말을 한다. 내 몸에 들어와 독이 된 말을 밖으로 쏟아낸다. 

 

독이 되는 말과 치유가 되는 말. 말은 그렇게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아버지의 생일날, 나는 타인에게서 받은 상처의 말을, 나를 병들게 하는 말을, 아버지에게 쏟아낸다. 아버지의 말은 내 몸속의 독을 희석시키고, 피를 돌게 하고, 다시 살게 한다. 아버지는 매번 나를 살린다.(2025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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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100권 정도 읽었더니 인생이 180도 바뀌었다는 제목의 유튜브 영상이 추천으로 떠있다. 나는 인생이 180도 바뀌었다는 말보다도 1년에 100권이면 한 달에 최소 8권 이상 읽었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그러니까 거의 매일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는 말이 아닌가! 그에 비하면 나는 한 권 읽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얼마 전까지 트위터에서 병렬 독서라는 말이 많이 보였는데, 그것도 내겐 놀라운 일이다. 그렇게 독서를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는 한 권의 책을, 오랜 시간을 들여(그렇다고 특별히 공들여 읽는 것도 아닌데!) 겨우 읽고 나서야 다음 책으로 건너갈 수 있는 것이다. 다른 건 다 차치하고 일단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다는 건 참 부러운 능력이 아닐 수 없다.(2025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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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장미의 계절이지만, 수련의 계절이기도 하다. 오늘은 어제보다 온도가 내려가 산책하기 수월했다(어제는 산책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산책하면서 본 저수지의 수련들은 정말 비현실적인 물체처럼 보였다. 며칠 전보다 더욱 많아진 수련에, 그 비현실적인 색에 눈을 떼지 못했다.(2025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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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꽃을 피웠던 화초가 죽었다. 죽은 화초를 버리니 화분만 남는다. 남겨진 화분을 보는 일은 일종의 삶의 은유 같기도 해서 나는 한참이나 화분을 바라본다.(2025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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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흐렸으나 오늘은 눈부셨다. 좀 더운 듯했으나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 주었다. 붉은 꽃의 토끼풀을 보았고, 무슨 일인지, 길의 갈라진 틈으로 개미 군단이 모여 있었다. 쾌적하게 산책할 수 있는 날이 점차 줄어들고 있음을 느낀다. 그렇다고 오는 여름을 마다할 순 없지.(2025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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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단편소설 하나씩 읽는 것도 힘이 든다. 하긴 한 페이지, 한 문장, 한 글자도 읽기 힘들 때가 있으니. 역시 주말이 되어야 하는 걸까.(2025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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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언어)에는 무게가 있다. 자신이 한 말의 무게를 가늠치 못하고, 자신의 현란한 말 기술(알맹이가 없는)에 도취되어 배설하듯 내뱉다 보면 결국 자신이 한 말에 자신이 당하게 된다. 제발 말의 무게를 아는 자가 정치인이 되고, 지도자가 되면 좋겠다. 정신이 어질어질하다.(2025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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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을 읽다가 문득 책날개에 적힌(주로 그 출판사의 책을 홍보하기 위한) 수많은 소설가들의 이름과 소설 제목들을 본다. 이토록 많은 이야기들이라니! 허나, 수많은 사람들의 삶만큼 소설이 존재한다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2025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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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에 경도된 자들은 음모가 있다는 의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음모를 직접 만들어내기도 하는 것인가?(2025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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