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속의검은잎

단상들

시월의숲 2025. 4. 15.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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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군가의 마음에 가 닿을 수 있을까. 네 결심은 굳고, 나는 그 굳은 결심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내가 하는 말은 그저 네 결심을 존중한다는 말뿐. 그리고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보라는 말뿐. 이토록 무기력한, 이토록 안타까운. 무엇을 결정하든 너를 지지한다는 말이 결코 무관심으로 들리지 않기를 바랄 뿐.(2025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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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을 했는데 왜 다리가 아니고 어깨가 아픈 걸까?(2025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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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세계에서, 이상한 사람들과, 이상한 일들을, 이상한 기분으로, 이상할 정도로 오래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몸이 천근만근이지만, 아무도 없는 집은 천국과 다름없다. 이상하지. 이상한 건 세상인가 나인가?(20211201)

 

그렇게 이상한 세계에서 나는 또 적응 중이다. 내내 적응만 하다 끝나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된다. 삶이란 그런 걸까? 이장욱은 '적응하는 사람은 조금씩 자신이 아니라서 좀 안 맞는 옷이나 신발을 착용한 채로도 어느덧 잘 걸어 다'닌다고 썼다. 위로 아닌 위로, 슬픔 아닌 슬픔, 내가 아닌 나.

 

요즘 나는 말수가 줄었고, 좀 침울해졌다. 나도 모르게 내가 몸에 힘을 잔뜩 주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갑자기 어깨가 아프고, 갑자기 목이 뻐근하다. 봄인데 봄인 줄 모르겠는 봄이다. 꽃은 피는데 제대로 만끽할 수 없다. 여러모로 잔인한 계절. 깨어나는 것은 여러모로 힘이 드는 일이다.(2025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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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하염없이 무언가를 바라보고 싶다. 아무런 감탄도 경외도 질투도 불안도 없이. 십 년 전의 나는 어쨌든 열심히 살려고 했던 것 같은데. 하지만 지금은 뭐든 열심히 하는데 지쳤다. 네가 언제 그렇게 열심히 했다고 그래! 누군가 꾸짖는다면 할 말은 없지만.(2025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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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벅차오른다. 지극히 당연한 결정에 이토록 가슴을 졸여야 하다니.(2025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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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이 있어 새벽에 일어났더니 하루가 무척이나 길게 느껴진다. 새벽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오래 깨어있는 만큼 피로도 많이 쌓이지 않을까? 아니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들은 일찍 자기도 할 테지.(2025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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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소년이 온다》를 다시 읽고 있다. 십 년도 더 전에 읽었을 때보다 읽는 속도가 더 느리다. 한 챕터를 읽을 때마다 왜 이리 울컥하는 순간이 많은지. 원래 책을 빨리 읽는 편은 아니지만 한강의 책은 더 그렇다. 어쩌면 당연히 그러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러할 수밖에 없는지도.(2025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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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활짝 열었다. 그것이 마치 특별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창문을 열자마자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가 들린다. 드문드문 보이는 작은 벚나무에도 꽃이 피었다. 세탁기를 돌리고, 거실에 있는 식물들에게 물을 주었다. 오늘은 오래 미뤄둔 분갈이를 해야겠다. 좀 더 편안히 숨 쉴 수 있도록.

 

드디어 분갈이를 했다! 마당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파트에서 분갈이를 하려니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그동안 방치해 두었던 작은 화분들도 다 정리했다. 분갈이를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지만, 제발 무탈하게 살기를 빌었다.(2025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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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은데, 왜 쓸데없는 말일수록 하고 싶어지는 걸까. 그것은 삶의 모순일까, 비극 혹은 희극일까 아니면 비밀일까? 그냥 오기일뿐일까? 쓸데없는 말이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어? 그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상대방의 눈빛과 말투, 대답에서. 그러므로, 입을 다물어야 할 때를 아는 사람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지만 나는 아직 보지 못했네. 내 뒷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혹은 얼마나 아름답지 않은지(나는 앞모습보다는 뒷모습인데). 침묵하는 법이 아니라 침묵할 줄 아는 법은 도대체 누구한테서 배울 수 있을까.(2025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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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때문에 죽는 건 영화에서나 있는 일이지. 거의 죽을 것처럼 보이던 사람도 시간이라는 약으로 인해 살아나 다시 사랑을 찾았다 노래하네.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는 없는 걸까? 사랑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 있는 걸까. 나는 아직도 모르겠네. 정말 모르겠네.(2025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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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식이 일상이 되어버린 걸까? 내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2025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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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사람의 차량에 가방을 놓고 내리고, 식당에서 순두부를 주문하려 했는데 순댓국을 주문하고, 카페에서 주문한 커피를 가지러 가다 의자를 넘어뜨리고. 날씨는 점차 따뜻해지는데 나는 봄을 타고 있는 걸까. 생명력으로 충만한 이 봄날이 나는 어째 좀 힘겹다.(2025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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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 차로 누군가를 태우고 어딘가로 출발하다가 경계석을 들이박고 말았다. 차는 큰 소리를 내며 펄쩍 뛰었다. 잠이 덜 깼던 걸까.(2025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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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 시간 걸려 내려간 남쪽에는 벌써 벚꽃이 지고 있었다. 바닥에는 벚꽃잎들이 분분히 흩어져 있었고, 바람이 불자, 미미하게 달려 있던 벚꽃잎들도 일제히 떨어져 흩날렸다.(2025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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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과거의 수치스러운 일이 떠오를 때면, 깊은 숨을 한 번 들이쉬고 저 먼 곳을 바라보자.(2025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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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가 아파 재채기를 하기 겁이 난다. 그렇다고 재채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2025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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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살아보지 아니 한 삶에 대해서, 마치 다 아는 듯, 그런 삶은 일반적이지 않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폭력이 아닌지요. 당신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을 가만히 듣고 있는 상대방의 괴로움과 절망을 당신은 아시는지요.(2025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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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내 예상을 뛰어넘는 것들.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한 범주에 가닿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사람들. 혼신의 힘을 다하는 사람들. 부서지는 몸. 털리는 영혼. 갈리는 이빨. 썩는 마음. 왜 어떤 이들은 그런 식으로밖에 말할 수 없을까 고민하게 만드는. 정말 중요한 건 '일'이 아니라 '말'이라는 것을 나는 요즘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2025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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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정말 고생 많았어요.(2025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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