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내가 이 세계를 깊이 사랑한다

시월의숲 2025. 8. 24. 17:28

 

이 내란 사태는 왜 이렇게 내게 개인적일까.
왜 이렇게 낯익고, 내밀한 폭력으로 다가올까.(황정은, 『작은 일기』, 90쪽, 창비, 2025.)
 
 
*
황정은의 일기를 읽었다. 그의 소설이 아닌 일기. '작은'이라는 말이 앞에 붙은.
 
2024년 12월 3일부터 2025년 4월까지의 일기다. 우리는 2024년 12월 3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다. 그날 우리들은 모두 각자의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었다. 저자 또한 그날 오후 세면대 밸브에서 물 새는 걸 발견하고, 단편을 이어 썼으며, 꿈을 꾸고, 이디스 워튼의 『이선 프롬』을 읽기 시작했고, 그 소설을 읽고 눈과 고독, 고립된 삶, 자신이 아는 겨울을 닮은 이야기를, 이번 겨울에 많이 읽고 싶다고 썼다. 그리고 그날 오후 열 시 이십삼 분.

계엄. 
 
나 역시 처음 방송으로 그날의 계엄 선포를 보았을 때 ― 아마 모든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 미친 거 아닌가,라는 말이 제일 먼저 나왔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리고 그가 하는 말을 믿을 수가 없어서, 인간의 기본권이라는 말을 생전 처음으로 인지하고, 그것이 침해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나를 믿을 수 없었다. 농담이라고 누가 말해줘. 나는 그렇게 속으로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내 아버지나 할아버지 세대처럼 실제로 계엄령을 겪은 적도 없는데, '왜 이렇게 내게 개인적으로 다가오는지, 왜 이렇게 낯익고, 내밀한 폭력으로 다가오는지' 정말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건 고작 인터넷을 통해 소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밖에 없었다. 서울과 거리가 먼 곳에 있다는 건 핑계일 것이다. 의지만 있다면 우리는 어디든 갈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내 의지는 그리 적극적이지 못했다. 나는 그것을 생각하면 고개가 숙여진다. 지금껏 내 자유는 무임승차의 결과물이었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기에. 나는 그것이 늘 부끄럽다. 지금까지도.
 
이 책은 그 역사적인 시기를 적은 개인적인 일기이지만 결코 개인적이지만은 않다. '작은' 일기라고 스스로를 낮게 여기고 있지만 결코 낮지도, 작지도, 하찮지도 않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내가 그 시기 동안 했던 생각의 궤적이 저자의 생각과 이리도 일치하는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계엄과 그것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 그것을 받아들이는 저자의 태도와 생각, 분노, 경악, 슬픔, 고통, 경이, 환희 등등 그 모든 감정들이 마치 내 것처럼 느껴졌다. 이어져 있다는 게 그런 걸까.
 
지난 겨울과 봄은
나름으로 삶을 가꾸며 살아도 권한을 가진 몇 사람이 작정한다면 도리 없이 휩쓸리고 뒤흔들릴 수밖에 없는 작은 존재,
내가 그것이라는 걸 실감한 국면이자 계절이었습니다.
또한 나는 작아서 자주 무력했지만
다른 작음들 곁에서 작음의 위대함을 넘치게 경험한 날들이기도 했습니다.(189~190쪽, 후기)
 
세상엔 이상하고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도 분명 있지만, 그래서 나 스스로 무력해지는 일이 많지만, 그 반대편에 서서 작은 목소리들을 크게 만드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다는 것, 그러니까 저자의 입을 빌려, '다른 작음들 곁에서 작음의 위대함을 넘치게 경험한 날들'이기도 하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큰 위안인지, 얼마나 다행인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를 깨닫게 되는 날들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