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시월의숲 2025. 9. 14. 00:35

 

 

언제, 어떻게 하다 내가 <동물농장>을 만화로 보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학창 시절의 내겐 컴퓨터도 없었고, 지금처럼 OTT도 없었으니, 당연히 텔레비전을 통해 보았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내가 그 만화를 넋 놓고 보았다는 사실이다. 나는 전체주의나 러시아 혁명 같은, 이념이나 역사는 전혀 모른 채 만화에 빠져들었으며, 그 매혹의 기억만이 지금 내게 선명하게 남아있다. 

 

대체로 좋은 예술작품이라고 할 때(그건 어쩌면 상대적인 것일지도 모르지만),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이 보더라도 머릿속에 선명히 각인되는, 그리하여 오랜 시간이 지난다 하더라도 그때의 기억이 흉터처럼 남아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 내게 그러했다.

 

만화로  《동물농장》을 본 지 얼마나 지났을까? 이제야 나는 원작인 소설 《동물농장》을 읽었다. 읽으면서 오래전 보았던 만화의 장면들이 어쩔 수 없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방해되지 않았고, 오히려 소설의 장면들을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결코 끝나지 않는 우화라는 것을 씁쓸히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처음 나는 이 소설을 읽고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소설은 그 자체로 너무나 완벽하여 내가 달리 덧붙일 말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느낀 점이 내가 생각해도 너무나 진부한 것이어서 그것을 글로 쓰는 것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 같았다. 그리고 책 뒤편에 실린, 이 책의 번역자가 쓴 작품해설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으므로. 그는 이 소설을 시대적 풍자와 항구적 우화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대목.

 

소비에트 체제의 역사적 실체가 소멸하고 없는 지금 이 시대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여전히 『동물농장』이 강한 적절성과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 정치 사회의 권력 현실을 부패시키는 근본적 위험과 모순에 대한 항구한 알레고리라는데 있다. 오웰이 그린 동물농장은 지금의 세계에도 있고 미래 세계에도 있을 것이다.(163쪽, 작품해설 중에서)

 

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누군가 너무나도 타당하고 맞는 말을 할 때 우리는 할 말을 잃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그저 네 말이 맞다, 고 맞장구쳐 주는 일 외에는 없는 것이다. 그런 책 앞에서, 그런 해설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처음에 나는 이 소설에 대한 감상문을 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이 고전이라는 반열에 올랐다는 것은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읽힌다는 것일 텐데, 그것은 과연 옳은 일인가? 아니, 옳고 그름을 떠나 그렇게 지속적으로 읽힌다는 것은 인간이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하고, 끊임없이 타락의 유혹에 넘어가고, 그것이 타락인 줄 모르거나, 알면서도 속이고, 그것을 방조하거나 옹호하는 무리가 생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역자의 말처럼,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의 세계에도 있고 미래 세계에도 있게 된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닌가? 그러니까 이 소설이 전체주의에 대한 우화로써 항구히 작동한다면 그보다 암울하고 슬픈 일이 있을까. 

 

인간의 폭력성과 권력욕, 이기심, 야만성, 혐오와 모순이라는 건 우리가 극복해야 될 대상이 아니라 우리 안에 내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하고 그것에 대한 비판과 고발의 정신을 잊으면 안 된다는 의미라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내가 견딜 수 없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과 폭력성, 노골적인 혐오 그 자체다. 말이 안되는 말을 계속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무력감이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의문이다. 한강 작가가 말했듯,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다. 무고한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쏘는 자와 그것을 온몸으로 막는 자가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에서 오는 인식의 어긋남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것은 얕은 인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인간이란 끝 간 데 없이 야만과 폭력을 휘두르고 권력에의 질주를 서슴지 않지만, 또 다른 인간의 이면에는 반성하고, 비판하며, 온몸으로, 펜으로, 그림으로, 음악으로, 영화로 항거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이 끊임없이 읽힌다는 것은, 현재와 미래의 '동물농장'에 대한 끊임없는 경고와 같을 것이므로. 그러니까 그것은 곧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에 대한 지속적인 반성과 경계인 것이다. 진정 암울하고 슬픈 일은 이 소설을 읽지 못하게 되는 일일 것이다. 소설 속 동물농장은 비관적이지만, '동물농장'을 읽는 우리들은 선택을 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이 부디 옳은 선택이기를 바랄 뿐.

 

그대여, 진정 개, 돼지가 되기를 바라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