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를 떠났고 아는 사람이 없는 방식으로 살기를 원했다. 그것은 이방인이 되는 것이다. 저기,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사용하는 이방인이 간다.(배수아, 《이바나》 중에서)
*
내가 처음으로 이 책을 읽은 때가 언제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 내가 알 수 있는 건, 내가 이 책을 읽었다는 사실 뿐. 어쩌면 나는 너무 일찍 이 책을 읽은 건지도 모른다. 그때는 여행이란 내게서 너무나 먼 곳에 있어 감히 생각할 수조차 없는 것이었고, 심지어 작가가 말하는 여행이란 더더욱 내게서 멀고 생소한 것처럼 느껴졌으니. 아니다. 이 말은 맞지 않다. 사실 나는 이 소설에 대한 어떠한 느낌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러므로 지금의 내가, 오래전에 읽었던 이 책의 느낌 같은 것을 결코 알 길이 없는 것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때는 그랬을 거라는, 짐작일 뿐. 나는 이 책을 처음 읽는 것처럼 읽었으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여행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살면서 여행을 상상하거나 생각하거나, 직접 실행에 옮긴다. 나 역시 살면서 멀고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그저 하니까 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어쩌면 지금껏 단 한 번도 내 의지로 어딘가를 여행해 본 적이 없는지도 모른다(나는 나를 확신하지 못한다). 학창 시절에는 수학여행이니 뭐니 해서 따라갔고, 대학시절은 기억나지도 않으며,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일하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귀찮다는 이유로, 여행이란 것을 가지 않았다. 다만 누군가의 짜인 계획에 이끌려 어딘가로 다녀온 적은 있었다. 내게 여행이란 반드시 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고, 굳이 어딘가를 가보고 싶다는 간절함 따위도 없었다. 누군가 가자고 하면 따라가긴 했지만 내가 나서서 가자고 하는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한 번 어딘가를 가면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사진을 찍고, 낯선 것에 감탄하곤 했다. 나는 때로 그런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뭐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으니까, 하고 넘겼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배수아의 《이바나》는 여행에 관한 수많은 정의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여행이란 다른 어떤 여행에 대한 정의보다도 내게 낯설고 이국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매혹되었다. 매혹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침묵을 찾아 떠나는 여행에 관한 이야기'라고 그는 썼다. 이 소설에서 여행이란, '목적지는 없고 다만 경유지가 있을 뿐'이며, '자신을 노출하는 기쁨을 누리지 않는' 그런 여행이다. '이바나'는 그들이 타고 다니는, 거의 폐차 지경에 이른 오래된 차의 이름이지만, 그것은 또한 그들의 자유스럽고 비타협적인 여행의 정신을 표상하는 이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들의 여행은 순탄하게 진행될 것인가, 아니면 그들의 폐차 지경에 이른 이바나처럼 위태로울 것인가. 삶이 순탄하다면 그것은 삶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위태로움이야말로 삶의 속성이라고 한다면 그들은 그들의 삶을 제대로 살고 있는 셈이다. 그들은 스스로 침묵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들이며, 그것은 다른 말로 진정한 자유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끝내 이렇게 말하게 된다. ' 나는 고통을 통해서만 존재한다. 다른 것은 오직 공허할 뿐이다. 지나간 사랑이나 슬픔의 기억은 마치 지어낸 이야기였던 것처럼 이제 희미하다. 그러나 고통의 기억은 잊히지 않는다.'
크리스토프 바타유의 《다다를 수 없는 나라》 속 선교사들이 얼핏 떠오르기도 했다. 침묵 속으로, 고독과 망각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하지만 '다다를 수 없는 나라' 속 선교사들에게 여행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고, '이바나' 속 인물들에게 종교적 신념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내게는 '이바나' 속 인물들의 비타협적인 신념이 여행이라는 말과 어우러져 풍기는 그 독특한 분위기가 좋았다. 어떠한 역사적, 종교적, 사회적, 철학적 신념도 아닌, 그저 한 인간이 단독자로서 스스로 선택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정신의 결단이, 내게 더욱 와닿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 역시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는 여행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관광이나 휴양을 목적으로 하는 여행이 아니라 침묵을 찾아 떠나는 여행 말이다. 나는 상상한다. 굳이 이국의 땅이 아니라도 좋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낯선 땅에 도착한다. 그곳의 낡고 허름한 숙소에 짐을 풀고 나와 그곳을 걷기 시작한다. 내가 그곳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오직 그것뿐이다. 그곳을 걷고, 배가 고프면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 밥을 먹는다. 그리고 다시 걷는다. 밤에는 숙소에서 글을 쓴다. 아무런 주제도 없고, 플롯도 없는, 그저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낮동안 걸으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적는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노트북을 하나 사야 하리라. 오로지 글을 쓰기 위하여. 어떤 열망이라면 열망일, 그저 상상이라면 상상일 그런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이바나》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죽어야 한다면, 언젠가 한 번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 장소는 절대적으로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그런 곳이 아니어야 한다. 길 위에서 죽어야 한다면 행려병자도 좋다. 서류가 부족한 낯선 외국인들을 수용하는 수용소나 정체불명의 부랑자들을 집어넣는 감옥이나 혹은 운이 좋다면 높은 천장에 벽화가 그려져 있는, 지독하게 낡은 호텔의 이층 방이라도 상관없다. 난방이 되지 않으므로 추위는 참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담배를 피워도 좋다.
이바나도 그렇게 죽었을 것이므로.(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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