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우연과 필연의 이중주

시월의숲 2026. 1. 21. 20:36

 
 
읽으려고 샀지만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은 과연 언제 읽게 되는 것일까? 나는 늘 그것이 의문이었다. 그러니까 '언젠가 읽어야지'의 언젠가는 언제인가. 책을 책장에서 꺼내 손에 들고 책장을 넘기며 읽게 되는 때 말이다. 영원히 읽지 못하는 책들도 있겠지만(많겠지만), 내 방 가득 나를 둘러싸고 있는 책들은 저 멀리 존재하는 책들보다 일단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으니(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있으니), 적어도 그 책들을 읽을 확률은 높을 것이다(정말 그런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왜 어떤 책들은 먼저 읽게 되고, 또 어떤 책들은 나중에, 또 어떤 책들은 더 나중에 읽게 되며, 급기야 어떤 책들은 있는지도 모르게 잊히는 것일까. 
 
김완의 『죽은 자의 집 청소』를 읽고 나는 그런 것들을 생각했다. 그러니까 나는 이 책의 내용보다도 이 책을 '이제야' 혹은 '드디어' 읽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 책은 2020년에 1판 1쇄가 발행되었으니 햇수로 7년째가 되는데, 나는 지금에서야 이 책을 읽은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위해서 무려 7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까? 그런데 왜 하필 지금일까? 7년 동안 나는 왜 이 책을 읽지 못한(않은) 것일까? 이 책은 고개만 살짝 돌리면 보이는, 내 오른편 책상 위에 늘 놓여 있었는데.
 
사실 이런 물음은 아무 의미가 없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몇 개의 우연이 겹쳐서 생긴 내 마음의 알 수 없는 작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지금 읽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자연스러운 일처럼 느껴진다. 마치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그럴 수밖에 없는 것처럼. 그러니까 모든 책들은 저마다 그것을 읽어야 하는 때가 있는 것이다. 안달하지 않아도 그날은 온다. 언젠가 읽겠지, 하며 책장에 꽂아둔 책들은 아직 읽을 때가 도래하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그때는 언제인가? 애석하게도 그것만은 미리 알 수 없다. 예감조차 없다. 그것은 때가 되어야만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이 그때라고 느낀 사연은 이러하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본가의 뒷집에 사는 아저씨가 죽은 지 이틀 만에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빈번하게 부고 문자를 받았으며, 때로 조문을 가기도 했고, 오랜만에 도서관에서 제목만 보고 빌린 책은 예상치 못한 투병일기였으므로(심지어 작가는 출간 후 세상을 떠났다), 그 시기에 김완의 『죽은 자의 집 청소』를 읽은 것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고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죽은 지 이틀 만에 발견된, 뒷집 아저씨의 자동차는 본가의 집 앞에 며칠이나 머물러 있다가 어느 순간 사라졌다. 누군가 갑자 세상을 떠나고, 그가 남긴 것들이 또 다른 남겨진 자들에 의해 치워 진다. 이 책은 그렇듯 남겨진 자들에 의해 치워 지는 죽은 자의 흔적과 그 흔적을 둘러싼 것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남겨진 자들에 의해 죽은 자의 흔적 제거를 의뢰받은 자, 즉 특수 청소를 전문으로 하는 직업을 가진 자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내가 지금 이 책을 읽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슨 책을 읽어야 한단 말인가?
 
이곳을 치우며 우연히 알게 된 당신의 이름과 출신 학교, 직장, 생년월일이 다 무슨 의미가 있는지요? 그것은 당신에 대한 어떤 진실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집을 치우면서 한 가지 뚜렷하게 알게 된 것이 있다면 당신에 대한 것이 아니라 당신을 향한, 이곳에 남은 자들의 마음입니다.(128~129쪽)
 
이 책을 읽은 것은 여러 겹의 우연이 겹친 결과지만, 그렇게 겹쳐진 우연이 이 책을 선택하는데 필연적으로 작용한 것만 같다. 우연과 필연의 이중주라고나 할까. 이 책에 대한 감상으로 이런 이상한 글이 어울리느냐 하는 건 또 다른 문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