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눈먼 탐정

시월의숲 2026. 4. 5. 18:44



모든 것이 끝나고 모든 것이 잊히고 죽은 다음 뒤늦게 우리를 찾아와 등뒤에서 우리의 목을 껴안는 사후 암시와도 같은 빛. 우리의 삶은 우리 안에 축적된 타인들의 무작위적 거울상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나는 눈먼 탐정에게 말했다.(배수아, 「눈먼 탐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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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제목만 보았을 때 이 소설은 '눈먼'과 '탐정'이라는 꽤 상반된 보이는 두 단어의 강렬한 대비 때문에 추리물로써의 기대감이 한껏 높아진다는 것. 하지만 작가가 배수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것이 일반적인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 우리가 생각하는 여행이 배수아가 말하는 여행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배수아식의 '눈먼 탐정'은 무엇인가. 일단 그렇게 생각하며 읽어야 한다는 것을.
 
이 소설의 '눈먼 탐정'은 실제로 눈이 멀지도 않고, 엄밀히 말해 탐정도 아니다. 단지 그가 그렇게 불러주기를 원하기 때문에 작중 화자인 내가 유일하게 눈먼 탐정이라고 불러주는, 그런 사람이다. 그렇다고 그를 탐정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는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자신의 집안에서 일어났던 살인사건에 대해 파헤치는 중이다. 아주 오래전에 일어난, 이미 끝나버린, 가족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외에는 아무런 단서도 없는 그런 일을 파헤친다는 점에서 그는 눈이 멀었다고도 할 수 있다. 사정이 그러하니 그가 눈먼 탐정이라고 불리기를 원한다고 해서 터무니없는 작명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죽은 자들의 행방에 대해 오래전부터 궁금해하는 마음'이 있었다고 작가는 작가노트에서 밝히고 있다. 슬픔에 잠긴 사람에게 왜 그리 슬퍼하느냐는 물음에 자신의 스승이 죽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자. 그에게 그 질문을 한 자가 바로 그 스승이라는 것. 그는 자신이 슬퍼하는 원인인 스승의 죽음을 만났지만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렇게 죽음은 우리가 알지 못한 채로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는 것일까? 이 이야기가 소설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소설 속 이야기는 두 개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눈먼 탐정과 죽은 삼촌의 이야기, 다른 하나는 화자인 나와 내 젊은 여인(엄마), 그리고 여동생(이모)의 이야기. 삼촌으로부터 물려받은 이름과 자작나무 막대기를 가진 눈먼 탐정과 내게 최초의 - 우체통에 편지가 떨어지는 - 소리를 들려준 엄마와 그녀를 돌봐주던 이모의 기억을 가진 나. 그들은 모두 죽었지만 내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어느 날 눈먼 탐정과 나는 그들을 만난다. 눈먼 탐정은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결심을 하고, 나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들을 만나게 된다. 그 순간은 '모든 것이 끝나고 모든 것이 잊히고 죽은 다음 뒤늦게 우리를 찾아와 등뒤에서 우리의 목을 껴안는 사후 암시와도 같은 빛'처럼 그들에게 다가온다.
 
'내 눈이 오직 눈먼 거울인 것처럼 생각하라고, 눈먼 탐정이 내게 말했다. 그러면 정반대의 것이 비친다. 지금 여기가 아닌 그 무엇이. 보려고 애쓰지 말라고 눈먼 탐정은 말했다. 정반대의 것은 우리의 눈에 스스로를 저절로 비추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죽은 자들의 행방에 대한 배수아식 탐구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 우리 곁에 있었던, 하지만 지금 사라진, 사람들을 다시 만난다. 배수아의 세계에서 우리는 모두 눈먼 탐정이다. 내 눈을 오직 눈먼 거울인 것처럼 생각할 수 있는, 순식간에 사라진 그 빛이 사실은 노란 뱀이었다는 걸 알아챌 수 있는, 그런 사람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