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김주완, 《줬으면 그만이지》, 도서출판 피플파워, 2023.

시월의숲 2026. 4. 19. 20:06

할아버지는 일찍이 '사람은 마땅히 올바른 것에 마음을 두어야지 재물에 얽매여서는 안된다'고 가르쳤고, 손자 장하는 '우리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랐을 뿐 저의 뜻에서 나온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라고 말했다는 대목에서 오늘날 김장하의 철학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었다.(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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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님은 가족 중에 제일 중심이 되는 분이시죠. 크나큰 병풍 같다고 할까? 큰 소나무 같다 할까, 커다란 나무 같은 분, 우리가 그 보호 아래 있는 그런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77~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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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당이 문 닫는 날 서울에서 찾아왔다던 그 장학생 김종명씨가 선생에게 말했다. 

"제가 선생님 장학금을 받고도 특별한 인물이 못 되어서 죄송합니다."

그러자 선생이 이랬다고 한다.

"내가 그런 걸 바란 게 아니야.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거야."(117~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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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하 선생은 자신의 장학생들에게도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 또한 장학생이 공부가 아닌 다른 길로 빠져도 끝까지 믿고 지지하며 기다려주었다.(1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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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고맙습니다. 제가 빠른 시일 내에 갚겠습니다."

그랬더니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에게 갚을 필요는 없고, 다음에 당신처럼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그때 그 사람한테 갚으면 됩니다."(1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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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원래 가난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일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저는 오직 가난 때문에 하고 싶었던 학업을 계속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과 같은 한약업에 어린 나이부터 종사하게 되어 작으나마 이 직업에서는 다소 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제가 본교를 설립하고자 하는 욕심을 감히 내게 되었던 것은 오직 두 가지 이유 즉, 내가 배우지 못했던 원인이 오직 가난이었다면, 그 억울함을 다른 나의 후배들이 가져서는 안 되겠다 하는 것이고, 그리고 한약업에 종사하면서, 내가 돈을 번다면 그것은 세상의 병든 이들, 곧 누구보다도 불행한 사람들에게서 거둔 이윤이겠기에 그것은 내 자신을 위해 쓰여져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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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리 살아올 수 있었냐는 질문에 그는 "내가 어려운 삶을 살아봤기 때문에"라고 답했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 성공한 사람 중에는 스스로 잘난 맛에 도취해 사는 사람들이 더 많다.(3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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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하 선생에게도 "마약과도 같은 돈 버는 재미는 느껴보지 못했는지" 물어봤다.

"나는 그런 것 못느꼈어. 돈에 대한 개념도 그렇게 애착이 없었고, 그리고 재물은 내 돈이다는 생각이 안 들고 언젠가 사회로 다시 돌아갈 돈이고 잠시 내가 위탁받았을 뿐이다. 그 생각 뿐이야. 이왕 사회로 돌아갈 돈인 바에야 보람있게 돌려줘보자 그런 거지."(3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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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이야기입니다. 스님이 그 눈보라가 치는 어느 추운 겨울날, 고개 마루를 넘어서 이웃 마을로 가고 있습니다. 저쪽 고개에서 넘어오는 거지 하나를 만납니다. 곧장 얼어 죽을듯한 그런 모습입니다. 저대로 두면 얼어 죽겠는데~ 그래서 가던 발길을 멈추고 자기의 외투를 벗어줍니다. 자기 외투를 벗어주면 자기가 힘들 것이나 지금 안 벗어주면 저 사람이 금방 얼어 죽을 것만 같습니다. 엄청난 고민 끝에 외투를 벗어준 것인데 그 걸인은 당연한 듯이 받고는 그냥 가려는 겁니다.

그래서 이 스님이 기분이 나빠진 거예요. 나는 엄청난 고민을 하고 벗어준 것인데 저 사람은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 없구나 싶은 것이죠. 그래서 "여보시오.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는 해야 할 것 아니요?" 했더니 그 걸인이 하는 말이, "줬으면 그만이지. 뭘 칭찬을 되돌려받겠다는 것이오?"

그래서 그 스님이 무릎을 칩니다.

"아, 내가 아직 공부가 모자라는구나. 그렇지, 줬으면 그만인데 무슨 인사를 받으려 했는가. 오히려 내가 공덕을 쌓을 기회를 저 사람이 준 것이니 내가 저 사람한테 고맙다고 인사를 했어야지, 왜 내가 저 사람한테서 인사를 받으려 한 것이냐."

탄식을 하면서 그 고개를 넘어왔다는 이야기입니다.(328쪽, 2009년 9월 25일 형평운동기념사업회 이사회 김장하 선생 녹취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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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재칠시(無財七施)라는 말이 있습니다. 재산이 아무것도 없어도 일곱 가지나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죠.

그게 뭐냐면, 첫째가 화안시(和顔施)라는 겁니다. 얼굴빛을 환하게 해서 상대를 대할 때 이것도 큰 봉사라는 것이죠. 둘째는 자안시(慈眼施), 눈빛을 편하고 부드럽게 해서 상대를 바라보는 것도 큰 봉사라는 겁니다. 이건 재산이 없어도 되거든요. 그다음에 언사시(言辭施), 말씨를 부드럽게 해서 상대방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크나큰 봉사입니다. 그다음에 심려시(心慮施)라고 하죠. 마음 씀씀이입니다. 서로가 마음과 마음을 위로해주는 그런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그다음에 사신시(捨身施)라고 하지요. 결국 몸으로 때우는 겁니다. 할머니가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 걸 보면 좀 들어주고, 얼마든지 몸으로 때울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는 상좌시(床坐施), 자리를 양보하는 일입니다. 자리 양보하는 일은 큰 돈 안 들여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거든요. 마지막으로 방사시(房舍施)입니다. 요즘 와서는 그런 일이 좀 적겠습니다만, 그래도 방을 빌려줄 일이 있을 것입니다. 옛날에 나그네가 많이 다닐 때 그 나그네가 집 떠나서 어느 헛간에라도 좀 재워 달라 할 때 방에 재워주는 것, 이것은 정말로 엄청난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 일곱 가지를 무재칠시라 그럽니다. 재산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곱 가지 보시입니다. 어찌 보면 아주 쉬운 일입니다. 쉬우면서도 실천해 보려하면 참 어려운 일이 이 무재칠시입니다. 돈이 없어도 할 수 있으면서도 막상 해 보려하면 가장 어려운 일 이 이 무재칠시입니다.(329~3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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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하에게 살아오면서 언제 가장 행복했는지 물어봤다.

"글쎄, 매일 행복하니까."(3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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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은 쌓아 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되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는다. 돈도 이와 같아서 주변에 나누어야 사회에 꽃이 핀다."(3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