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득 읽지 않은 책들로 둘러싸인 방에 홀로 앉아서, 핸드폰이나 유튜브를 몇 시간씩 보고 있으니 갑자기 탕진(蕩盡)이란 단어가 생각났다. 탕진의 사전적 의미는 '모두 써서 없애다'라는 뜻인데, 써서 없애는 것에는 재물 따위뿐만 아니라 시간, 힘, 정열 등을 '헛되이' 쓰는 것도 해당된다고 인터넷 국어사전에 나와 있었다. 나는 재물이나 시간, 힘, 정열이라는 단어보다도 '헛되이'라는 말에 눈길이 갔다. 그 말이 나를 건드렸다. 나는 지금 헛되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내가 읽지 못한 책은 끝내 읽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기 때문일까. 나는 언젠가 이런 문장을 쓴 적이 있다. 지금의 나는, 내가 이룬 것이 아니라 이루지 못한 다짐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이 말을 고쳐서, 지금의 나는 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