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고요한 읽기

시월의숲 2025. 3. 8. 21:57

 

 

우리는 문장으로 생각하고, 생각한 것을 문장으로 표현합니다. 내가 하는 생각은 내 안에서 나온 것이고, 그러니까 내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없지만, 그러나 그 생각은 어떤 문장의 작용 없이는 태어날 수 없는 것이니 온전히 내 것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이끌려 나와 모습을 보이기까지 그 생각이 내 안에 있었는지조차 모를 테니까요.(이승우, 《고요한 읽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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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독서 방법은 이것이다. 우선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인 문장들이 적힌 페이지를 메모해 둔다. 책을 다 읽으면 메모해 둔 페이지의 문장들을 블로그에 옮긴다. 블로그에 옮기면서 다시 한번 더 그 문장을 읽는다. 그렇게 두 번 정도 읽고(엄밀히 말해 두 번 읽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책을 덮는다. 그렇게 읽은 책을 내 책상 왼 편 - 눈에 잘 띄는 곳 - 에 놓아둔다. 며칠을 놓아두어야 한다는 기준은 없다. 며칠이 될 수도 있고 몇 주, 길면 몇 달이 될 수도 있다. 지금 내 책상 옆에는 몇 년째 놓아둔 책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고 나서 그 책에 대해서 생각한다. 퇴근을 하고, 밥을 먹고, 일상을 보내면서 책상 위에 올려둔 그 책을 힐끔힐끔 쳐다본다. 잊었다가 다시 보고, 보고 나서 잊으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책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무엇을 느꼈는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 그 책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혹은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책을 바라볼 때도 있다. 책이 말을 걸어주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때로는 발췌해 놓은 문장들을 다시 읽어보기도 한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다. 내가 그 책에 대해서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을 때까지, 책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까지, 내가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그리하여 결국엔 머릿속에 떠오른 몇 가지 생각들, 단어들, 심상들, 느낌들을 글로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 

 

일단 뭐라도 생각나는 게 있다면 다행이다. 나는 생존의 동아줄을 잡은 사람처럼 문득 떠오른 단어나 이미지 혹은 어떤 느낌들에 매달린다. 그래서 뭐가 되든 일단 그것을 쓰기 시작하면 이미 절반 이상은 온 것이다. 그것은 매번 이상하고도 신기한 일이다. 구체적인 내용이 생각나지 않더라도 일단 글을 쓰기 시작하면(타자를 치기 시작하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뭐라도 되는 것이다. 그 결과물은 처음에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것 또한 이상하고도 신기한 일이다. 내가 처음에 쓰고자 하는 것들이 글을 쓰면서 나도 제어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버리곤 하니까. 그래서 처음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글이 써지기도 하니까.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 또한 마찬가지다. 나는 처음에 이승우라는 작가에 대한 나만의 느낌과 오랜만에 읽은 그의 산문집 《고요한 읽기》에 대해서, 그러니까 수없이 많이 그은 밑줄(블로그에 옮겨 놓은 문장)에 대해서 쓰려고 했다. 다른 책들보다 유난히 많이 그어진 밑줄이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들을 말해줄 수 있으리라 확신(혹은 의심) 하면서. 이 책을 읽는 동안 느꼈던 특유의 - 종교적 색채를 띤 - 고요함과 마치 유려한 건축물을 보는 듯한 이승우식 대칭적(?) 글쓰기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하려고 했던 것이다.

 

어떤 책의 특별함은, 그것을 읽으면서 그은 밑줄의 개수만큼 달라진다. 어떤 책이 다른 책들보다 유난히 많은 밑줄이 쳐져 있다면 그 책은 그에게 어떤 방향으로든 특별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지만 늘 그렇듯 글은 내가 생각했던 대로 써지지 않는다. 나는 이 책에서 느꼈던 이승우식 글쓰기의 사유하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쓰지 못했다(어쩌면 쓸 수 없었는지도). 하지만 어쩌랴. 이렇게 변죽만 울리는 글쓰기라는 게 내가 쓸 수 있는 것(쓸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읽고 느낀 것의 전부라면 기꺼이 붓이 가는 대로 쓰는 수밖에. 글을 쓰는 사람은 분명 나지만,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나는 그 느낌이 싫지 않다. 오히려 마음에 든다. 그렇게 무슨 글이든 쏟아내고 나면 또 다른 책으로, 생각으로, 시간들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밖(에 있는 것)을 보려면 당연히 눈을 떠야 하고, 안(에 있는 것)을 보려면 어쩔 수 없이 눈을 감아야 한다.(24쪽)

 

책을 읽기 위해서 나는 당연히 눈을 떠야 했고, 다 읽고 나서 안(에 있는 것)을 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눈을 감아야 했다. 그렇듯 이 책은 눈을 감아 안(에 있는 것)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순간을 고요히 선사한다. 안(에 있는 것)이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라고 고요히 깨닫는 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