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배수아라는 소설가를 좋아한다. 쏘아보듯 가늘게 치켜 올라간 눈매와 냉소를 머금은 듯한 그녀의 미소는 지루한 일상을 살아가는 내게 불온함과 건조함, 그리고 신선함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 눈빛은 내 모든 생각과 행동들이 그녀의 눈에 읽히고 있는 듯한 착각과 함께, 이어서 묘한 불안감을 불러 일으키며, 그런 날카로운 시선으로 보는 그녀의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하는 궁금증을 일게 만든다.
내가 배수아라는 소설가를(아니 엄밀히 말해서 그녀의 소설을) 어떻게 처음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 우연한 기회에 그녀의 장편 '랩소디 인 블루'를 읽고 나서 였을 것이다.
그 소설은 내게 적잖은 혼란을 불러 일으켰는데, 일단 읽기가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소설 읽기에 겨우 재미가 들어갈 무렵 시점이 일관되지 않고 혼란스럽게 얽혀 있는 그 소설은 내게 배수아라는 소설가를 멀어지게 만들었다. 비록 그 소설의 시점이 젊은이들의 방황과 혼란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적인 장치였음을 알고 나서도 말이다. 그 이후 그녀의 몇편의 단편과 그녀가 연재했던 신문의 칼럼과. 두권의 장편을 더 읽게 되었으며 그렇게 해서 지금의 '이바나'와 만나게 된 것이다. 아마 그녀의 건조하면서도 냉소적인 문체에서 풍기는 매혹이 나를 그녀의 소설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바나'는 이전에 읽은 '동울원 킨트'보다 먼저 나온 소설이다. 어떤 책이 먼저 나왔는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겠지만 나는 작가의 의식이 '이바나'에서의 여행을 끝내고 '동물원 킨트'로 정착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느낌은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다. 정착이란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고 어떤 의미에서 정착이란 익숙해진다는 말일텐데, 그녀는 그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을 지배하는 어떤 거대한 시스템이나 통념들에서 벗어나 침묵을 원한다. 침묵은 곧 비밀이며 비밀을 가진다는 것은 어떤 낯선 도시속의 이방인이 되었을때 가질수 있는 것이다. 그녀는 낯선 곳에서의 이방인으로 고립되기를 원하는 것이다.(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야기가 빗나간 것 같다. 다시 '이바니'로 돌아가자.
우선 쉽게 말해 이 소설은 일종의 '여행기'이다. 그렇다고 어떤 특정지역의 이국적인 풍경이라던지, 그 나라 사람들과의 만남, 혹은 그 나라 고유의 음식이나 집등에 관한 기록은 결코 아니다.
소설 뒷편의 해설에 실려 있는 줄거리를 소개하면 이런 것이다. 우리('나'와 K)는 여행을 하는 일행이고 여기에 '나'의 부모였던 Y와 대령의 이야기가 끼어들고, 소설의 또 하나의 축인 B와 산나의 만남과 헤어짐의 이야기가 얽혀있다. 여기서 '나'는 '우리'의 여행을 글로 남기는 작업을 한다.
이 소설에서 줄거리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아니 별 의미가 없는듯 보인다. 소설의 제목인 '이바나'는 그들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의 이름이기도 하고 그들이 쓰고 있는 글의 제목이기도 하고, 어떤 몰락한 도시의 이름이기도 하며, 어떤 곳에서는 아주 흔한 사람의 이름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소설이 침묵을 찾아 떠나는 여행기라고 말한다. 소음으로 꽉찬 이 도시에서 침묵을 찾아 떠난다는 것은 일탈하고 싶은, 벗어나고 싶은 욕구에 다름아니다. 다시말해 거대한 도시속에서, 그 시스템속에서, 소음속에서 불면에 시달릴수 밖에 없는 도시인들의 탈주의 욕망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소설은 소설로서의 재미가 덜할지 모른다. 소설에서의 일반적인 서사구조랄까 어떤 에피소드가 약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소설은 낯설다. 그러므로 이 소설을 형식적으로 따지고 들기 보다는 그냥 느껴야 하는 것일게다. 그녀의 소설을 읽고, 이건 뭐야 하는 반응을 보이는 이들에게 그래,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다 알고 있으니까 얼굴 그만 찡그리고 그냥 느껴봐, 라고 말하듯.
양귀자는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에서 모든 금지된 것들은 매혹이다, 라고 말한다. 그것은 금지 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은밀함을 느끼게 되고 또한 호기심을 가지게 되는데서 오는 것이리라. 하지만 이렇게 말해도 되지 않을까. 낯설음도 매혹이라고. 하지만 금지된 것과 낯설음은 전혀 별개의 단어가 아닐 것이다. 배수아의 소설에서 내가 느낀 낯설음은 질서정연하고 지루한 일상에서의 탈주의 욕망에서 오는 것이고 그 욕망은 어떤 면에서는 금지되어 있는 것이므로. 그런 욕망이 있는한 나는 배수아의 다른 소설을 찾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벗어나고 싶고, 낯선 이방인이고 싶으니까.
그 눈빛은 내 모든 생각과 행동들이 그녀의 눈에 읽히고 있는 듯한 착각과 함께, 이어서 묘한 불안감을 불러 일으키며, 그런 날카로운 시선으로 보는 그녀의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하는 궁금증을 일게 만든다.
내가 배수아라는 소설가를(아니 엄밀히 말해서 그녀의 소설을) 어떻게 처음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 우연한 기회에 그녀의 장편 '랩소디 인 블루'를 읽고 나서 였을 것이다.
그 소설은 내게 적잖은 혼란을 불러 일으켰는데, 일단 읽기가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소설 읽기에 겨우 재미가 들어갈 무렵 시점이 일관되지 않고 혼란스럽게 얽혀 있는 그 소설은 내게 배수아라는 소설가를 멀어지게 만들었다. 비록 그 소설의 시점이 젊은이들의 방황과 혼란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적인 장치였음을 알고 나서도 말이다. 그 이후 그녀의 몇편의 단편과 그녀가 연재했던 신문의 칼럼과. 두권의 장편을 더 읽게 되었으며 그렇게 해서 지금의 '이바나'와 만나게 된 것이다. 아마 그녀의 건조하면서도 냉소적인 문체에서 풍기는 매혹이 나를 그녀의 소설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바나'는 이전에 읽은 '동울원 킨트'보다 먼저 나온 소설이다. 어떤 책이 먼저 나왔는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겠지만 나는 작가의 의식이 '이바나'에서의 여행을 끝내고 '동물원 킨트'로 정착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느낌은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다. 정착이란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고 어떤 의미에서 정착이란 익숙해진다는 말일텐데, 그녀는 그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을 지배하는 어떤 거대한 시스템이나 통념들에서 벗어나 침묵을 원한다. 침묵은 곧 비밀이며 비밀을 가진다는 것은 어떤 낯선 도시속의 이방인이 되었을때 가질수 있는 것이다. 그녀는 낯선 곳에서의 이방인으로 고립되기를 원하는 것이다.(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야기가 빗나간 것 같다. 다시 '이바니'로 돌아가자.
우선 쉽게 말해 이 소설은 일종의 '여행기'이다. 그렇다고 어떤 특정지역의 이국적인 풍경이라던지, 그 나라 사람들과의 만남, 혹은 그 나라 고유의 음식이나 집등에 관한 기록은 결코 아니다.
소설 뒷편의 해설에 실려 있는 줄거리를 소개하면 이런 것이다. 우리('나'와 K)는 여행을 하는 일행이고 여기에 '나'의 부모였던 Y와 대령의 이야기가 끼어들고, 소설의 또 하나의 축인 B와 산나의 만남과 헤어짐의 이야기가 얽혀있다. 여기서 '나'는 '우리'의 여행을 글로 남기는 작업을 한다.
이 소설에서 줄거리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아니 별 의미가 없는듯 보인다. 소설의 제목인 '이바나'는 그들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의 이름이기도 하고 그들이 쓰고 있는 글의 제목이기도 하고, 어떤 몰락한 도시의 이름이기도 하며, 어떤 곳에서는 아주 흔한 사람의 이름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소설이 침묵을 찾아 떠나는 여행기라고 말한다. 소음으로 꽉찬 이 도시에서 침묵을 찾아 떠난다는 것은 일탈하고 싶은, 벗어나고 싶은 욕구에 다름아니다. 다시말해 거대한 도시속에서, 그 시스템속에서, 소음속에서 불면에 시달릴수 밖에 없는 도시인들의 탈주의 욕망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소설은 소설로서의 재미가 덜할지 모른다. 소설에서의 일반적인 서사구조랄까 어떤 에피소드가 약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소설은 낯설다. 그러므로 이 소설을 형식적으로 따지고 들기 보다는 그냥 느껴야 하는 것일게다. 그녀의 소설을 읽고, 이건 뭐야 하는 반응을 보이는 이들에게 그래,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다 알고 있으니까 얼굴 그만 찡그리고 그냥 느껴봐, 라고 말하듯.
양귀자는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에서 모든 금지된 것들은 매혹이다, 라고 말한다. 그것은 금지 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은밀함을 느끼게 되고 또한 호기심을 가지게 되는데서 오는 것이리라. 하지만 이렇게 말해도 되지 않을까. 낯설음도 매혹이라고. 하지만 금지된 것과 낯설음은 전혀 별개의 단어가 아닐 것이다. 배수아의 소설에서 내가 느낀 낯설음은 질서정연하고 지루한 일상에서의 탈주의 욕망에서 오는 것이고 그 욕망은 어떤 면에서는 금지되어 있는 것이므로. 그런 욕망이 있는한 나는 배수아의 다른 소설을 찾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벗어나고 싶고, 낯선 이방인이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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