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 이해인
나는 문득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누군가 이사오길 기다리며
오랫동안 향기를 묵혀둔
쓸쓸하지만 즐거운 빈집
깔끔하고 단정해도
까다롭지 않아 넉넉하고
하늘과 별이 잘 보이는
한 채의 빈집
어느 날
문을 열고 들어올 주인이
'음, 마음에 드는데......'
하고 나직이 속삭이며 미소지어 줄
깨끗하고 아름다운 빈집이 되고 싶다
-시집,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열림원, 1999) 중에서
* * *
오래 전에 읽은 이해인 수녀의 시집을 다시 펴든다.
인간의 가장 깊은 곳, 잊고 있었던 기본적인 삶의 진리들을
쉽고, 아름답게 깨우쳐 주는 그녀의 언어들.
비워져 있는 것의 아름다움과 그 쓸쓸함까지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어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자신의 욕망과 모든 번뇌를 비운 그 자리에
비로소 하늘과 별도 깃들 수 있음을,
모든 종류의 사랑이란 결국
자신을 끊임없이 비워가는 일인지도 모름을.
이해인 수녀의 시를 읽으면서,
시인이라면 누구나 구도자의 심성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아니,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 대상이 신(神)이든, 그 무엇이든
인간은 누구나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갈망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그 갈망의 대상을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물질적인 것보다는 정신적인 것으로,
인간보다는 모든 생명에게로 돌리는 힘이 그녀의 시에는 있다.
그것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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