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는나의힘

호두나무 이야기 - 윤의섭

시월의숲 2005. 11. 19. 11:44

 

호두나무 이야기

 

 

 

- 윤의섭

 

 

 

외가에 가면 호두나무 한 그루

가을이면 가지마다 사람 머리 같은게 열렸다

호두 한 알을 깨면 거기 웅크린 외할머니 들어있다

애기 같던 어머니 시집가던 내력을 죄다 끄집어주던

외할머니 쭈글쭈글한 얼굴은 호두를 닮았다

내 어렸을 때 찍은 낡은 사진을 보여주면

주술사처럼 담배 피우며

잊었던 날들을 연기 속에 담아 주었고

외할머니 기억 속에는 더 먼 세상이 들어 있었다

너무 멀리 떠나와 이젠 보이지 않는

한 점 땅 덩어리에 살던

시집가던 여인들에 대한 얘기가

해마다 열리는 호두껍질속에 단단히 숨은 채

때는 호두나무 숲이 무성했다고 한다

외할머니 편안히 발 뻗고 누운 무덤가에 즐비했단다

발가락 사이에 돋은 나무

어떤 호두는 속이 텅 비었다

너무 멀리 흘러온 탓이다

 

 

 

 

* * *

 

 

 

 

나는 외가에 대한 기억이 없다.

대신 내 유년시절의 대부분은 할머니와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뿐,

그들은 내게 부모 이상의 존재였다.

시인은 호두나무에서 외할머니를 생각하지만,

내게 할머니를 떠오르게 하는 것은 무엇이던가

아침마다 나를 잠에서 깨워준 할머니의 노랫소리,

늦게까지 놀다 돌아오면 언제나 골목 어귀부터 풍겨왔던 된장국 냄새,

이유없이 아픈 내 배가 할머니의 손이 닿으면 거짓말같이 나았던 기억,

그런 모든 것들은 이제 들을수도, 맡을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아스라한 기억 속에 있다

그로부터 나는 얼마나 많이 흘러온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