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나는 담배를 피우지 못할 것이다

시월의숲 2006. 7. 5. 19:15

 

갑자기 담배가 피우고 싶다.

 

어렸을 때 딱 한 번, 담배가 무척 피워보고 싶다는 생각에 길가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주워본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물론 그때도 그냥 줍기만 했지 피우지는 않았다. 내 호기심보다 나를 억누른 도덕심(?)이 더 컸을 때였으니. 아니면 금기를 어긴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더 컸을지도 모르고.

 

지금 생각해보면 왜 난 어렸을 때 그토록 어른스러웠는지(적어도 어른스러워지려고 했는지) 모를 일이다. 보통, 호기심과 나이는 반비례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닐까. 나이가 어릴수록 호기심이 큰 법이고 나이가 듦에 따라 호기심도 서서히 줄어드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생리일텐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 물론 호기심과 나이의 관계를 딱 잘라 반비례 관계에 있다고 단정지을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대체적으로 말이다. 이건 다른 사람들이 어렸을 때 호기심을 가지고 한번쯤 해본 행위들을 나는 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때 나를 억누르던 모든 것들이 지금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사라지는 것인줄로만 굳게 믿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그토록 어른스러워지려고 노력했는지도 모르겠다. 담배 피우면 안돼. 난 절대 술은 마시지 않을거야. 거짓말 하면 안돼. 욕해서는 안돼. 돈을 훔쳐서는 안돼. 야한 비디오를 봐서는 안돼. 안돼, 안돼, 안돼.....

 

담배.

담배를 피운다고 어른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내 나약함의 증거일지 모른다. 내가 담배를 피우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도 모두 내 삶에서 무언가 힘드는 일이 있기 때문이라고 투정부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단순히 생각으로만 끝날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안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을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 나는 담배를 피우지 못할 것이다. 어렸을 때의 죄악감과 두려움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나약함.

삶의 무게를 얄팍한 담배 연기로 날려 보내려는 나약함과,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두려움 때문에 결국 피우지 못하는 나약함 중에 과연 어느 것이 더 나약할까?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드라마  (0) 2006.07.26
물 먹는 하마가 필요해!  (0) 2006.07.13
지금,  (0) 2006.07.01
축구열기  (0) 2006.06.15
그녀에게  (0) 2006.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