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김경욱,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

시월의숲 2007. 6. 7. 15:05

김경욱의 소설집,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를 읽었다. 예전에 <장국영이 죽었다고?>에 이어서 두 번째로 읽은, 김경욱의 소설이다. 모두 열두 편의 소설이 들어있는데, 물론 그 짤막한 소설들의 줄거리를 다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고 싶지도 않거니와 그럴 필요도 없을 것 같고, 무엇보다 열두 편의 소설의 모든 줄거리를 기억하고 있지 않으니까.

 

기억, 하니까 생각났는데, 비단 이 소설 뿐만이 아니라 다른 소설, 특히 단편 소설집을 읽고 나서 독후감을 쓰려고 하면 어떻게 써야 할지 멍해지곤 한다. 장편소설이야 하나의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나마 쓰기에 편한데, 단편 소설이 묶여져 있는 소설집은 다 읽고 나서도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지지 않으니까 막막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이건 내가 소설의 줄거리를 모조리 다 파악하려고 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작가의 일관된 세계관을 내가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물론 둘 다 일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단편 소설을 읽고 나서 며칠이 지나면 책에 담긴 소설의 내용이 희미해진다. 남는 것이 있다면 그 소설의 분위기 정도이다. 그럴 때마다 느껴지는 허망함이란...

 

원래 그런 것인지, 아님 내가 이상한 것인지 모르겠다. 물론 장편 소설이나 기타 다른 책들도 읽고 나서 며칠이 지나면 기억에서 희미해지곤 하지만, 단편소설은 더 정도가 더 심하니까 하는 말이다. 그래서 곧 잊혀질 책들을 왜 읽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아, 이건 내 독서의 이유를 뿌리째 흔드는 심각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줄거리는 희미해진다고 해도 분명 내게 남겨지는 것이 있다는 믿음으로 독서를 했는데,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막연히, 책이니까 안 읽는 것보다는 읽어두면 유익하다는 단순한 생각을 해야 하는 건가? 아, 이렇게 생각하다보니 책의 기능이나 효용의 문제로 넘어가는 것 같다. 아... 그게 아닌데... 어쩌면 나는 별거 아닌 것 가지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경욱의 소설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이야기가 옆으로 샜다. 어쨌거나 그래서 나는 김경욱의 소설집의 전체적인 분위기에 대해서 말하려고 한다. 김영하의 재치있으면서도 진중한 분위기와도 다르고, 박민규의 재기발랄함과도 거리가 멀며, 일군의 여성작가들이 지닌 섬세함과도 거리가 먼 김경욱의 소설은 언급한 소설가들에 비해서 별 특색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김경욱이라는 소설가가 뚜렷한 개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 생각으로 김경욱 소설의 두드러지는 특징은 아마도 '건조함'에 있는 것 같다. 소설 뒷편에 실린 김병익의 해설처럼 '황량함'이라고 불러도 좋을 그것.

 

이번 소설집에 실린 모든 소설에서 그는 죽음이라는 소재를 집어넣고 있다. 자살한 사람, 자살을 안내해 주는 사람, 갑자기 실종된 사람(죽음을 암시하는) 등. 그의 소설에서 죽음은 어떤 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그저 일상 속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 중의 하나로 묘사된다. 그것은 어떤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도 아니고, 주변 사람의 일생에 큰 파문을 일으키는 것도 아니다. 죽음을 바라보는 그러한 작가의 시선에서 나는 삶의 건조함, 혹은 황량함을 느꼈다. 일상 속에 뻗어 있는 보이지 않는 죽음의 그림자를 포착해서 시종일관 아무렇지 않게 서술하는 그의 문체는 어떻게 보면 냉소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가치판단도 내리지 않고, 인간을 쉽게 단죄하지도 않은 채, 그저 우리의 삶 속에 존재하는 불온한 '구멍 혹은 틈(해설자의 표현을 빌리자면)'을 들여다 보거나, 반대로 구멍 속에서 부조리한 현실을 바라다본다. 덤덤한 그의 시선이 때론 더욱 섬뜩하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어디까지나 내 기준으로, 제목 만으로 책을 집어 들 수 있게 만드는 재주를 가진 작가를 들라면 나는 주저 없이 김경욱이라 말하고 싶다. 표제작인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를 비롯하여 <고양이의 사생활>, <만리장성 너머 붉은 여인숙>, <거미의 계략>, <늑대인간>, <토성에 관해 갈릴레이가 은폐한 몇 가지 사실들> 등. 제목만 들어도 무슨 내용인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지 않는가? 소설을 읽을 때, 제목과 내용이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제목이 무엇을 상징, 혹은 은유하고 있는지 생각하면서 읽는다면 아마도 더욱 소설 읽는 재미가 날 것이다. 뭐, 물론 그렇게 느끼거나 느끼지 않거나 그건 읽는 사람의 자유겠지만. 어디까지나 내 생각으로는 그렇다는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