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레몽 장, 『책 읽어주는 여자』를 읽고

시월의숲 2007. 10. 3. 12:00

이 소설은 제목 그대로 책 읽어주는 여자에 관한 이야기다. 어쩌면 책 읽어주는 행위 그 자체에 관한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다. 마리 콩스탕스라고 하는 여자는 남는 시간을 좀 더 유익하고 생산적으로 보낼 수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친구 프랑스와즈의 조언으로 책 읽어주는 일을 시작하게 된다. 책 읽어주는 여자라고? 처음 주인공도 친구의 그러한 엉뚱한 생각에 말도 안 된다며 코웃음을 치다가 점차 그 엉뚱함에 매료되어 급기야 스스로 신문에 광고를 내게 되고 책 읽어주기를 바라는 사람을 기다리게 된다.

 

그녀에게 책을 읽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책을 읽지 못하는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지체 장애를 가진 아이, 나이가 많아 기력이 쇠한 백작부인, 바쁜 업무로 인해 교양을 쌓을 시간이 없는 사장, 시력이 점차 떨어져 책을 읽지 못하게 되어버린 은퇴한 대학교수, 너무 바빠서 딸과 시간을 거의 보낼 수 없는 엄마 등... 그녀는 그들에게 맞는 텍스트를 찾아서 읽어주며 시간을 같이 보낸다. 때론 책 읽기가 아닌 엉뚱한 요구를 들어주기도 하면서. 하지만 그녀의 책 읽기는 그들의 삶에 어떤 힘이랄지, 새로운 기운을 불어 넣어주는 것이 된다.

 

독서행위에 관한 흥미로운 고찰을 담은 소설이었다. 이런 것을 메타픽션이라고 하던가? 소설 속에 소설이 들어있는 소설. 이 책은 한 편의 소설이면서도 그 안에 수많은 텍스트들이 들어있다. 주인공이 읽어주는 여러 책들의 구절이 소설 중간중간에 삽입되어 한 편의 새로운 소설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책 읽어주는 여자를 읽는 독자라니! 이 소설은 또한 독서를 하면서 형성되는 작가와 화자, 독자와의 그 보이지는 않지만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를, 눈으로 보이게끔 만든다. 그것은 어쩌면 성적인 흥분과도 닮아있지 않을까 하는 말을 이 책은 하고 있는 듯 하다. 어쨌거나 멋진 책과 독자와의 만남은 그 자체로도 짜릿하며 설레는 일일 것이므로.

 

생각해 봤는데, 책 읽어주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것도 꽤 멋진 일일 것 같다. 책 읽어주는 남자, 혹은 독서사로 불리게 될까? 물론 그렇게 되려면 책을 읽을 줄만 알아서 되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도 남들보다 좋아야 하고, 상대방의 취향이나 독서수준 등을 파악해서 그에 알맞은 책도 골라줄 줄 알아야 하며, 그러자면 무엇보다 나 자신이 여러 분야의 책을 많이 읽어봐야 하겠지만.

 

책 읽는 행위에 대해 돌아보게 되는 소설이었다. 이야기 자체도 흥미롭지만 그 안에 실려 있는 여러 텍스트들을 읽는 재미 또한 상당한, 한마디로 매력적인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