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토 파실린나라고 하는 생소한 이름의 핀란드 작가가 쓴 <목 매달린 여우의 숲>이라는 소설을 읽었다. 제목에서부터 흥미를 자극하는 이 소설은 핀란드라고 하는 미지의(적어도 내게는) 땅의 작가가 역시 핀란드의 북부지방이라고 할 수 있는 라플란드 지방을 배경으로 쓴 것이었다.
소설은, 어쩌다가 금괴를 얻게된 도둑과 알콜 중독자인 공병부대 출신의 현역 소령, 양로원에 가기 싫어 도망친 아흔살의 노파가 라플란드 지방의 인적이 드문 산속 오두막에 같이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리고 있다. 얼핏, 전혀 어울리지 못하고 갈등만 일으킬 것 같은 세 명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로 이용하고 이용 당하면서 서서히 융화되어가는 모습에 때론 웃음이 나기도 했고 때로는 이상하게 마음 한켠이 따스해지기도 했다. 사람들 사이의 정이란 어떤 상황에서든, 그 누구에게든 생길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러한 기묘한 동거가 전체적으로 코미디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도둑이 가진 금괴 때문이다. 도둑이 훔쳐온 어마어마한 금괴로 인해 그들은 어느 호텔 못지 않은 시설을 갖춘 오두막을 지을 수 있었고, 소령과도 의기투합할 수 있었으며, 노파와도 함께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작가는 섣부른 도덕적 잣대로 그들의 죄(금괴는 도둑이 훔쳤지만 결과적으로 소령과 노파는 그의 죄를 묵인해 준 것이 되니까 공범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를 벌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작가가 묘사하는 도둑의 행위에는 어떠한 죄의식의 그림자도 찾아 볼 수 없다. 오히려 도둑은 소령과 노파에게 자신이 가진 재력을 나누어 주고 함께 편히 사는 것이다! 노파가 죽었을 때 눈물까지 흘리면서 말이다.
그들이 살게 된 라플란드 지방은 핀란드 북부 지방으로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산악지대이다. 정신이 제대로 박혀 있는 사람이라면 여행으로라도 가지 않을 그 곳에 저마다 무엇으로부터 도망쳐 온 사람들이 모여든다. 작가는 아마도 그들을 단죄하는 대신 그들에게 낙원을 만들어 주고 편히 살게 하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그들에게 평생 먹고 살아도 남을 만큼의 금괴를 덥썩 던져주고,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선심쓰듯 주어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 준 것이 아닐까. 물론 등장인물들이 돈을 물쓰듯 하긴 하지만. 어쩌면 작가는 그렇게 금괴를 훔쳐서라도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잘 살게 되기를 바란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자신들의 식량을 위협하는 여우를 잡기 위해 덫을 놓은 숲을 '목 매달린 여우의 숲'이라고 명명했듯 어쩌면 우리 삶도 그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덮칠지 모르는 삶의 어두운 덫에 걸리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 혹은 소시지 하나 때문에 이미 목이 걸려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를 사람들. 숲에 놓은 덫이 결국 여우를 잡는데는 실패하고 오히려 사람들을 잡는데 성공하는 모습이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아니, 뭐 이렇게 깊이 생각하는 척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이 소설을 읽는내내 재밌고 즐거웠으니까, 그것으로 충분하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과 역시 호기심을 자극하는 내용의 이야기. 한바탕 왁자지껄하고도 여운이 남는 코미디 한 편을 본 느낌이었다. 그것도 영화가 아니라 연극을 보고 났을때의 느낌이랄까. 라플란드 지방의 풍경과 분위기가 눈에 보이는 듯 하였으며, 인물들의 대화와 묘사가 생동감있게 다가왔다.
책의 앞부분에 저자는 한국 독자들에게 '어디에 살든지 인간의 삶은 보편적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 소설을 읽다보면 정말 인간이 처한 상황과 그에 대한 대처방식 등은 어디에서나, 누구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우리 모두는 돈 걱정 없이 잘 살고 싶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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