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심 기대를 많이 했나보다. ‘히키고모리’라고 하는 자폐증 환자의 이야기를 공생충이라는 기묘한 생물과 연관시킨 것 자체가 이미 내 호기심을 자극하였고, 예전에 소설과 수필로 읽은 무라카미 류는 거침없는, 규율이나 도덕 같은 것에 얽매이지 않는 사고방식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무라카미 류의 『공생충』은 그러한 내 기대를 무참히 짓밟았다. 우선 읽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는데, 그 이유가 바로 공생충에 관한 학술적 정보(물론 거짓된)나 이페리트 같은 생화학 물질에 관한 사전적 정보를 너무도 무심하게 혹은 너무도 생뚱하게 소설 중간중간에 삽입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기대했던 것은 방안에만 처박혀 사는 한 인간과 그러한 인간에게만 전이되는 공생충과의 기묘한 공생관계와 거기서부터 파생되는 인간의 심리상태, 폭력성, 음울하고도 잔인한 무엇이었는데 그러한 것들을 발견하기에 이 소설은 너무나 건조하고 밋밋했으며 너무 기교에만 치우친 느낌이었다. 왜 그가 방에만 처박혀 지내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가 너무나도 짧고 무책임하여 그가 미친 사람이라는 사실 밖에 알 수 없었고 그리하여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작가가 아무리 집단적인 불합리에 대해 말하고 개체의 자유와 그 나름의 유토피아를 그리고 싶었다 하더라도 소설 곳곳에 나온 그러한 서술 때문에 작가가 전달하려는 바가 희석된 느낌이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집단적 사고방식에 대항하게 만들었는지, 무엇이 그를 일련의 거대하고도 짜여진 흐름에서 벗어나게 했는지에 대해 좀 더 깊은 성찰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저 피상적으로 그러한 흐름에서 단순히 벗어나서 폭력으로 대항하는 것이 쿨한 것이 된다거나 독립투사의 투철한 신념 같은 것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무라카미 류 특유의 폭력적인 묘사와 음울한 결말은 나름대로 좋았다. 그가 묘사하는 공생충도, 정말 방안에만 처박혀 살면 그런 것이 생길 것 같은 착각이 들만큼 생생하고 그로테스크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기대했던 것만큼은 아니었다. 매력적인 소재를 잘 활용하지 못한 소설이 아닌가 생각된다. 인간에 대해 좀더 시니컬하고 좀더 비판적이었다면 좋았을텐데. 많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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