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김연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를 읽고

시월의숲 2007. 10. 16. 16:37

참 해박하고 성실한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집에 든 아홉 편의 소설들이 하나같이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촘촘히 직조되어 마치 하나하나가 기기묘묘하기 그지없는 건축물을 보는 듯하였다.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하여 통념을 뒤집어엎는 작가의 상상력이 놀랍고 유쾌했으며 때론 믿음직스러웠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무엇보다 소설을 읽고 나서 가슴 깊이 와 닿는, 가슴 깊숙한 곳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것. 그러니까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쓴 느낌이랄까. 물론 역사적, 인문과학적 지식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는 것도 나름의 개성과 깊이 혹은 어떤 울림을 줄 수 있을 것이나, 개인적으로 이번 김연수의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에게서는 그러한 것들을 그다지 느끼지 못했다. 아, 이건 순전히 내 개인적인 생각임을 다시 한 번 밝혀둔다. 일견 현학적인 듯 보이지만 그것이 각각의 소설에 넘치지 않게 녹아들어가 있는, 그리하여 전체적으로 굉장히 성실하게 보이는 그의 글쓰기를 좋아하는 독자도 많이 있음을 알고 있다.

 

앞으로 내가 소설을 쓰고자 한다면 많이 배워야 할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면의 동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내 협소한 글쓰기에 비해 그는 인간과 역사와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몸소 부대끼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노력과 성실성이 그의 글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김연수의 이번 소설집은 역사에 밝지 못한 내게 있어서 읽는 내내 공부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지만 그건 전적으로 내 잘못이다. 나는 좀 더 이 사회를, 나아가 이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눈을 가져야 하며 그 안에 ‘속해있는’ 나와 인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며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나는 소설을 쓰고 싶은 것이지 자서전을 쓰고 싶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아아, 그렇다면 나는 과연 어떤 소설을 쓰고 싶은가. 나는 소설을 씀으로써 무엇을 감행하려 하는가. 나는 무엇을 꿈꾸는가. 김연수의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물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