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친구 A

시월의숲 2007. 12. 12. 15:21

친구 K로부터 친구 A의 이야기를 들었다. A는 나와 중학교 때부터 동창이었는데, 대학교를 다른 곳으로 간 이후 소식을 거의 듣지 못했다. A와는 그리 절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리 먼 사이도 아니었기에 K로부터 A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그 소식이라는 것이 그가 결혼을 한다는 것이었다. 뭐, 결혼이야 할 수 있는 것이니 별로 놀라울 것은 없었는데, 내가 놀랐던 것은 그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결혼 상대자도 같은 교회에 다니던 사람이라나.

 

내가 알기로 A는 결코 기독교신자가 아니었다. 별로 활동적이지도 않고 항상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으로 말을 할 때도 들릴 듯 말듯 이야기하곤 했었다. 그래서 나는 그와 이야기할 때 항상 귀를 쫑긋 세우고 그의 말을 들어야 했다. 그리고 K의 말로는 그때 그는 불교 신자였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교회의 적극적인 일원으로서 작년인가 제 작년에는 아프가니스탄으로 포교활동까지 하고 왔으며, 결혼을 한 후에는 중국으로 갈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의 놀라움이란!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왜 그때 그렇게 놀란 것인지 모르겠다. 그가 불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것에 놀랐던 것일까? 아니면 얌전하던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그의 결혼 소식에 놀랐던 것일까. 나는 그 소식을 듣고 난 후의 내 놀라움이 의아했다. 그것이 놀라운 일인가? 그는 그의 인생을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일텐데, 나는 그가 우스웠던 것일까. 마치 사이비 종교에 잘못 빠져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 미치광이 신도를 보는 것처럼?

 

나는 내가 우스웠다. 그의 소식만으로 그를 재단하고 평가하려 했으니. 실제로 그의 인생, 그의 믿음, 그의 생각을 전혀 알지도 못한채 말이다. 나는 소문으로 들리는 거침없는 그의 행보가 사실은 부러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스라하게 몇몇 장면으로 남아있는 그와의 추억(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었던가!)이 그의 전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내 기억 속에서 조작된 나 자신의 기억일 뿐, 그는 그의 인생을 살고 있고 나 또한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그리 놀랄 것은 없다. 그리고 사실 그것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그는 그가 가진 신념을 바탕으로 그의 생을 살아갈 것이다. 그의 행보에 그가 믿는 하나님의 은총이 가득하길 빈다. 이미 그러할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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