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이승우, 『그곳이 어디든』, 현대문학, 2007.

시월의숲 2008. 10. 28. 22:59

어렵사리 읽었다. 쉽게 읽히는 것 같다가도 어느새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메기가 일쑤였다. 지루한 것 같으면서도 쉽사리 눈을 떼지 못하는 묘한 흡인력이 있었다. 모순과 역설. 서로 시소를 타듯, 반대되는 혹은 비슷한 문장들이 대결을 펼치고 있었다. 터무니없는 말장난 같다가도 때때로 어떤 절실함이 느껴지는 문장들. 잠언같은 문장들.

 

소설은 주인공인 유가 서리라는 마을로 발령을 받고 그곳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는 이전에 있던 근무지로부터 퇴직이나 다름없는 인사발령을 받고 서리지사로 오게 되었는데 낯설고 황량한 풍경과 뭔가 수상하고 불친절한 서리사람들의 태도에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그곳에서 인수인계를 해 주어야 할 박과장이라는 사람은 온데간데 없고, 지갑도 잃고, 차는 기름이 떨어지고... 그러면서 그는 점차 곤란한 지경에 처하게 된다.

 

그곳이 어디든 그는 잘 적응을 하게 될까? '그곳이 어디든'이라는 제목은 그 뒤에 어떤 문장을 갇다 놓느냐에 따라 긍정의 의미를 내포할 수도 있고 부정의 의미를 내포할 수도 있다. 그 모순성이 이 소설의 큰 테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작가는 그러한 철학적이고도 종교적인 물음을 상당히 관념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관념적인 소설의 작가라고도 알려진 그는 이전 소설보다도 더 관념적인 소설을 완성해 내었다. 하지만 그의 그런 관념이 마냥 헛깨비같이 느껴지지 않은 이유는, 그가 말하려고 하는 것의 무게 때문일 것이다.

 

우리 인생은 짧은 찰나일 뿐이고 우리는 어딘가에 더해진 존재이 뿐이라는 생각. 더럽고, 썩고, 추악하고, 잔인하며 비겁한 세상에서 감각의 노예로서 사는 것은 진정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보다는 차라리 소설에 나오는 동굴 속 노아처럼 자신이 영원히 쉴 집을 만드는 일이 더 낫지 않은가? 영원의 세계를 기약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세상과 맞서지 못하는 자신의 비겁함, 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약함을 인정하는 것과도 같은 말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문제는 어떻게 해야하는가가 아니라 어떤 것을 할 수 있느냐인가? 온통 물음, 물음들.

 

이 소설은 그 자체로 거대한 물음과도 같다. 우리는 그 물음에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그것은 쉽게 대답할 수도 없는 것이거니와 쉽게 대답해서는 안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마지막, 서리라는 마을 전체를 사라지게 만드는 장면에서 나는 쉽게 결론 내릴 수 없는 삶의 모순을 느꼈다. 그곳이 어디든... 우리는 그 말 뒤에 어떠한 말을 넣어야 하겠는가 아니, 넣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