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민음사, 2007.

시월의숲 2012. 5. 16. 17:31

욕망하는 것은 득이 되고 또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도 득이 된다―왜냐하면 욕망은 그렇게 함으로써 증가되니까. 내 진실로 그대에게 말하나니, 나타나엘이여, 욕망의 대상의 늘 거짓될 뿐인 소유보다는 매번 욕망 그 자체가 나를 더욱 풍요롭게 해주었느니라.(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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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나엘, 그대를 닮은 것 옆에 머물지 말라. 결코 '머물지 말라', 나타나엘. 주위가 그대와 흡사하게 되면, 또는 그대가 주위를 닮게 되면 거기에는 이미 그대에게 이로울 만한 것이 없다. 그곳을 떠나야만 한다. '너의' 가족, '너의' 방, '너의' 과거보다 더 너에게 위험한 것은 없다. 무엇이건 그것이 그대에게 줄 수 있는 교육만을 취하라. 그리고 거기서 철철 흘러나오는 쾌락이 그 교육을 고갈시키게 하라.

나타나엘, 내 그대에게 '순간들'을 말해 주리라. 그 순간들의 '현존'이 얼마나 힘찬 것인지 그대는 깨달았는가? 그대가 그대 생의 가장 작은 순간에까지 충분한 가치를 부여하지 못한 것은 죽음에 대하여 충분히 꾸준한 생각을 지속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매 순간이, 이를테면 지극히 캄캄한 죽음의 배경 위에 또렷이 드러나지 않고서는 그런 기막힌 광채를 발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대는 깨닫지 못하는가?(53~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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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달아나 버리는 것이 나는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언제나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선택이 내게는 고르는 것이라기보다는 고르지 않은 걸 버리는 것으로만 보였다. 시간이 좁다는 것과 시간이 하나의 차원밖에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끔찍한 마음으로 깨달았던 것이다. 폭이 널따란 어떤 것이었으면 하고 바랐지만 그것은 한낱 선(線)에 지나지 않았고, 나의 욕망들은 그 선 위를 달리면서 어쩔 수 없이 서로 짓밟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이것' 아니면 '저것'밖에 할 수 없었다.……사실 지상에서의 '소유'가 어느 것이든 내게 반감만 자아내는 까닭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것밖에 소유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이 나는 두려운 것이다.(76~7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