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고려대학교출판부, 2006.

시월의숲 2012. 9. 9. 23:58

당신의 일상이 너무 보잘것없어 보인다고 당신의 일상을 탓하지는 마십시오. 오히려 당신 스스로를 질책하십시오. 당신의 일상의 풍요로움을 말로써 불려낼 만큼 아직 당신이 충분한 시인이 되지 못했다고 스스로에게 말하십시오. 왜냐하면 진정한 창조자에게는 이 세상의 그 무엇도 보잘것없어 보이지 않으며 감흥을 주지 않는 장소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 당신의 귀에 세상으로부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감방에 당신이 갇혀 있다고 할지라도, 당신은 당신의 어린 시절을, 왕이나 가질 수 있는 그 소중한 재산을, 그 기억의 보물창고를 갖고 있지 않습니까? 그곳으로 당신의 관심을 돌리십시오. 까마득히 머나먼 옛날의 가라앉아버린 감동들을 건져 올리려고 애써 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개성은 더욱 확고해질 것이고, 당신의 고독은 더욱 넓어질 것이며, 당신의 고독은 세상 사람들의 목소리가 멀리 비껴가는, 어둠에 잠기기 시작한 집과 같이 될 것입니다(15~16쪽).

 

 

*

 

 

사랑하는 것 역시 훌륭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어려우니까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 그것은 우리에게 부과된 과제 중에서 가장 힘든 과제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해야 할 최후의 과제이며 궁극적인 시험이자 시련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작업입니다. 다른 모든 작업은 사랑이라는 작업을 위한 준비과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모든 면에서 초심자인 젊은이들은 아직 제대로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즉 그들은 고독하고 소심하면서도 높은 곳을 향해 박동질치는 심장의 근처로 모인 모든 힘을 쏟아 그들은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68쪽).

 

 

*

 

 

 

당신은 많은 큰 슬픔을 겪으셨습니다. 이제는 모두 지난 일이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이렇게 지나간 슬픔까지도 당신에겐 힘겹고 기분 나쁜 일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오히려 그 커다란 슬픔들이 당신의 가슴 한복판을 뚫고 지나가지 않았는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당신이 슬픔에 잠겨 있던 동안, 당신 가슴속의 많은 것들이 변하지 않았나요? 당신의 어디인가, 즉 당신의 본질의 어느 한 부분이 변하지 않았나요?

슬픔의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하여 사람들이 슬픔을 시끌벅적한 곳으로 들고 갈 때, 오히려 그 슬픔은 위험스럽고 나쁜 것이 되는 것입니다. 표피적으로 그리고 아둔하게 치료한 질병처럼 그런 슬픔들은 물러나는 척하였다가는 짧은 잠복기가 지나고나면 전보다 훨씬 무섭게 터져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슬픔들이 가슴속에 집적되어 인생이 되면, 그 인생은 제대로 살지 못한 삶, 거부된 삶, 실패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삶으로 인해 죽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우리의 머리가 미치는 곳보다 좀더 멀리 내다볼 수 있다면, 우리의 감지력의 망루를 지나 좀더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슬픔들을 우리의 기쁨을 대할 때보다 훨씬 더 큰 신뢰로 참아 넘길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슬픔이란 무언가 새로운 것, 무언가 미지의 것이 우리 가슴속으로 들어오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우리들의 감정은 어쩔 줄 모르는 당혹감 속에서 입을 다물고, 우리의 내면의 모든 것은 뒤로 물러서고, 적막이 생겨납니다. 그러면 아무도 알지 못하는 그 새로운 것이 그 적막의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침묵하는 것입니다(80~8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