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비채, 2011.

시월의숲 2012. 10. 31. 20:56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문집>을 읽고 있다. 하루키의 에세이집 대부분이 그러하겠지만, 특히나 이번에 출판된 <잡문집>은 아무 때, 아무 장소에서 아무 페이지나 펼치고 읽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구성과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신문이나 잡지 등에 기고한 글 혹은 기고할 뻔한 글(미발표된 글)을 모은 것이라, 당연하게도 다양한 주제와 성격을 가진 글들이 잡다하게 실려있다. 제목처럼 정말 '잡문집'인 것이다.

 

읽고 있으면 마음이 느긋해지고, 순식간에 시간이 흐르며, 실실 웃음이 나기도 한다. 그의 글에도 물론 인간이 가진 고뇌와 일상의 스트레스 따위가 있으나 그것이 질척이며 발목을 잡는 불쾌함은 없다. 그것을 소위 '쿨'함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이 사람은 어떻게 이렇듯 일상적인 언어와 내용을 가지고 사람을 '읽는' 재미에 빠뜨릴 수 있을까 의아해진다. 이건 정말 무라카미 하루키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 비교적 두툼한 두께의 책임에도 순식간에 읽히게 만드는 능력. 그렇다고 그가 하려고 하는 말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물론 그리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쉬운 말은 쉽게, 어려운 말도 쉽게 해내는 솜씨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사실 심오함까지는 아니더라도(가볍게 쓴 글에 심오함이 담길 여지는 그리 많지 않겠지만) 글 속에서 느껴지는 진지한 태도는 그의 글을 마냥 가볍게 읽고 던져버리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어쨌거나 중요하고도 신기한 일은 내가 하루키 외의 소설이나 에세이를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자연스럽고도 빠른 속도로 읽은 적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하루키가 자주 쓰는 표현처럼 그것은 내게 있어 정말 '기묘'한 일이다. 그리고 이렇게 잡다한 글들을  모아서 책으로 출판할만큼 하루키란 사람은 참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았던 글을 꼽자면(현재까지 읽은 것 중에서) 가장 먼저 나와있는 '자기란 무엇인가 혹은 맛있는 굴 튀김 먹는 법'이라는 글이다. 하루키가 가진 위트와 진지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꽤 좋은 글이 아닐까 싶다. '자기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이고 자칫 무거워 질 수 있는 주제를 '맛있는 굴 튀김 먹는 법'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무라카미 하루키가 유일하지 않을까? 그의 글에 담긴 마법(그런게 있다면)의 비밀은 아마도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