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카롤린 봉그랑, 『밑줄 긋는 남자』, 열린책들, 1994.

시월의숲 2012. 11. 12. 22:30

 

 


내가 왜 이 책을 사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인터넷 서점으로 산 것이니, 아마도 이리저리 서핑을 하다가 누군가의 서평을 읽고 구입하기로 결정을 한 것 같다. 약간은 생뚱맞은 표정으로 이 책의 표지를 보고 있자니, 처음 내가 이 책을 읽기로 마음먹었을 때의 심정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아무런 감흥이나 기대없이 이 책을 읽어도 괜찮을까? 하는 약간의 의구심이 들었다.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지만, 생각해보면 이상야릇한 일이기도 해서, 마치 누군가 나 몰래 이 책을 내 방에 갖다놓은 것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이 들기도 했다. 책과의 만남이란 사람과의 만남과도 비슷해서, 어떤 사람과 만났을 때의 날씨와 옷차림, 장소 등 그 만남에 기여했던 모든 것들이 '그'를 기억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인지도 모르는데. 혹은 그것이 '그'와의 만남을 좀 더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 만남이 빈번하지 않을 경우에는 더 그렇다. 좀 더 자주 만나야만 비로소 '그'는 내 안에 '맨얼굴'로서 존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든다. 카롤린 봉그랑의 <밑줄 긋는 남자>를 읽기전 내가 좀 머뭇거렸던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으리라. 아무런 배경도, 지식도, 목소리도 없는, 그저 스쳐지나간 만남같은.

 

첫느낌은 그랬지만, 어쨌거나 이 소설은 책 날개에 찍힌 작가의 모습처럼 상당히 '귀여운' 소설이다. 딱 그런 얼굴을 가진 작가가 이런 소설을 썼으리라 생각이 되는 그런 소설. 주인공인 콩스탕스는 로맹 가리를 좋아하는 여성으로, 독서광이라고 할만큼은 아니지만 전혀 독서를 하지 않는 사람에 비해서는 꽤 준수하다고 할 수 있는, 그야말로 평범하게 독서가 취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어느날 로맹 가리의 책이 전부 다 해봤자 몇 권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이를 아껴서 읽기 위해 다른 책에 눈을 돌린다. 도서관에 등록을 하고 로맹 가리가 아닌 다른 작가의 소설을 빌려 읽기 시작하는데, 그녀가 빌린 세 권의 책 중 어느 한 권의 책 속에 연필로 '당신을 위해 더 좋은 것이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녀는 자신이 빌려간 소설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차였기에 그 문구가 바로 자신을 위해 남겨진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그때부터 그녀와 밑줄 긋는 남자 간에 암묵적 게임이 시작된다. 그녀는 밑줄 긋는 남자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그가 남긴 책 속의 문구를 찾아나선다. 그녀를 기다리는 건 그녀가 상상하던 바로 그 모습의 남자일까? 밑줄 긋는 남자가 보내는 메시지의 주인공은 정말 콩스탕스인가? 그건 지금 현재 벌어지고 있는 게임인가 아니면 이미 누군가에 의해 벌어졌던 게임을 따라가는 것일 뿐일까? 이런저런 의문이 꼬리를 문 채 소설은 차근차근 흘러간다.

 

소설을 읽기 전 내가 했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처음에 나는 주인공인 콩스탕스가 엄청난 독서광일거라고 생각했고, 우리가 고전이라고 부르는 많은 책들이 언급되고 인용될 것이라고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콩스탕스는 그리 열렬한 독서광도 아니었고 그녀가 밑줄을 찾아 읽어나가는 소설도 그 종류가 많지 않았다. 수없이 많은 책들의 바다에서 건져진 반짝이는 인용문들을 읽는다는 재미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살짝 꺾인 것이다. 그러한 인용문들을 어떤 이야기로 엮어 나갈까 하는 기대 또한. 그런 기대만 갖지 않는다면 이 소설은 비교적 재밌고, 가볍게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이 소설의 매력일지도 모른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귀여운 외모의 작가가 자신이 가진 딱 그만큼의 귀여움으로 그려낸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참으로 발랄하고 꿈이 많으며 소녀같은 주인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결국 밑줄 긋는 남자를 만났는가? 그것은 소설이 끝이 나고도 계속 진행되는 이야기이지만, 결국 모든 이야기들이 그러하듯 그녀의 사랑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이건 정말 만고불변의 법칙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이 소설은 사랑의 환상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환상적인 사랑은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밑줄 긋는 남자는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것이 있는 것처럼.

 

밑줄 긋는 남자가 존재한다는 사실. 이건 이 소설이 책을 매개로 한 사랑 이야기를 넘어서 독서 자체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 우리의 온 몸과 온 정신을 한 곳에 집중하여 한 글자, 한 글자를 정성을 다해 읽음으로써 무언가를 내 안으로 받아들인다는 것. 그것의 아름다움과 어려움 혹은 점진적이지만 분명히 기적과도 같은 변화. 그것을 이 소설은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신선함, 순진함, 발랄함, 익살 같은 것들로서. 우리는 콩스탕스가 만난 현실에서의 사랑이, 책 속에만 존재하는 밑줄 긋는 남자가 없었다면 결코 이루질 수 없었던 것임을 안다면, 책 속의 '그'의 존재를 쉽게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책을 읽는 순간 우리는 이미 '밑줄 긋는 남자'와 조우하고 있는 것이며, 그 때문에 우리의 인생이 새롭게 바뀔 수도 있음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런 면에서 '밑줄 긋는 남자'는 만인의 평등한 연인이라 할 수 있다. 책 속에서만 존재하는 연인. 하지만 그가 남긴 밑줄은 그것을 읽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또한 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그 연인은 늘 새롭고, 영원하다.